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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수의 방 =박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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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471회 작성일 22-10-26 16:33

본문

홀수의 방

=박서영

 

 

    잊겠다는 말 너머는 환하다. 그 말은 화물열차를 타고 왔고 꽃나무도 한 그루 따라왔다. 꿈이었나봐. 흩어지는 기억들. 슬픈 단어들은 흩어진 방을 가진다. 너는, 나를, 그녀를, 누군가를, 사랑은 없고 사랑의 소재만 남은 방에서 너는 긴 팔을 뻗어 현관문에 걸린 전단지를 만진다. 잊겠다는 말은 벼랑 끝에 매달린 손. 이미 그곳에 있었지만 도대체 그곳은 어디인가. 떠나면서 허공에 던져놓은 너의 단어들. 흩어져 있는 너의 단어들이 흰 배를 드러내놓고 날아가는 걸 본다.

    서로에게 익숙해지기 시작할 때 우리는 등을 돌렸다. 이제 내 몸에서 돋아나는 그림자를 이해하기 위해 계절의 밤을 다 소비해야 한다. 우리의 그림자는 한패가 아니다. 그림자는 암호처럼 커진다. 씻어도 투명해지지 않는다. 젖어서 흐물흐물 찢어지면 내부를 들여다볼 텐데. 이젠 버려야 하나. 어차피 한패도 아닌데. 우리는 오로지 나였을 한 사람과, 너였을 한 사람이 되기 위해 붙어 있다. 인정하자. 그러지 않으면 사랑에 빠져 완벽하게 사라질 수 있으니. 가로등 불빛 아래 쭈그리고 앉아 그림자의 윤곽을 돌멩이로 그려준다. 내가 떠나도 바닥에 남을 뭔가를. 기억은 순간순간 그림자들의 방을 뺏는 놀이 같아.

    그 와중에 잊고 싶다는 말이 개미처럼 우왕좌왕한다. 그 와중에 미안과 무안(無顔)은 깊은 방을 만들고 있다. 나는 방을 잃고 현관문에 덜렁덜렁 매달려 있는 너의 손목을 붙잡고 있다. 오로지 너였을 한 사람을 발굴하듯이. 그래서 발굴된 영혼이 다른 영혼을 찌를 듯이 기억하고 있는 시간 속에서. 연인들은 부지런히 서로를 잊으리라.

 

   얼띤感想文

    문 닫아 버리고 떠난 사람이 있다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며 나가버린 표정은 언제까지 허공에 맴돌고 있을까 대개 끊긴 소식은 끊은 소식처럼 불행으로 와 닿는다 그러나 허공은 먼 곳에 앉아 대식가의 얼룩으로 달라붙어 있다 간혹 문을 열 때면 무관심처럼 바라보아도 세심한 눈빛에 다만 따끔거리고 기를 불러일으키게 한다 시커먼 바구니에서 고독을 들어내듯이 무참히 선사하고는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 눈살 하나가 치켜 올라가고 그래 여기다며 배달한 환청만 긴 잠 속에서 너울거린다 익숙과 성숙은 고독과 같다는 말, 수초 너풀거리듯 바람에 누운 관찰자의 물결로 한쪽 손은 꽉 끼워 넣고 부르르 떨며 오는 꽃잎이었나, 깊게 물든 육포에서 씹을수록 우러난 단어에서 왼발은 수축한 걸음이었을 뿐 밤은 다시 오고 점점 더 자라는 표정은 구름만 닦고 있을까 식기를 내던지며 푸른 잔디밭을 거닐 때 푹푹 빠지는 허무와 쓸쓸함 안색은 방황을 가로막은 문이 있다 여전히 안 열리는 문을 바라보고 지나쳐간 봄이 있다 제본할 수 없는 링처럼 한겨울로 치닫는 눈사람이었다 사각사각 한 입씩 베어먹은 두 얼굴로 순간 녹아내린 포옹이었다 궁핍한 기억이 궁핍한 현실에 닿은 추억으로 내 양말에 엉겨 붙은 심장이었다 빈 냄비에 담은 끓일 것도 없는 면발로 다 끓인 것처럼 죽음만 맛보고 있다 너 나 안 보고 싶어 그러면 문 닫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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