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의 방식 =문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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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의 방식
=문성해
바다를 보면 내 숨의 깊이가 알고 싶어졌지 모슬포 바다 위로 둥근 테왁을 띄우고 해녀들이 제 숨의 깊이만큼만 물속에 머물다 나온다 언젠가 나도 내 숨의 깊이를 알아보려 나 속으로 뛰어든 적이 있었지 물에 불은 손가락들로 울퉁불퉁한 심연을 더듬으며 나도 나의 심해가 안녕한가 궁금했지 나는 눈부시게 바라보았지 푸른 정어리 떼처럼 솟은 여자들이 젖지 않은 숨을 공중으로 뱉어내는 것을, 허파에서 아가미로 조금씩 바뀌어 가던 그 숨의 방식을 (이것은 진화일까, 퇴화일까) 허파에 숭숭 구멍이 뚫릴 때까지 땅의 숨만 쉬다 갈 내 앞에서 몸의 숨을 누리다 온 해녀들이 숲을 헤치고 들어간다 숲 깊은 마을에선 숨의 방식이 바뀐 누군가 붉은 심장을 지상에 두고 가기도 한다
《아토포스》 2022년 겨울/창간호
문성해
1963년 경북 문경 출생. 200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입술을 건너간 이름』 『밥이나 한번 먹자고 할 때』 『내가 모르는 한 사람』 등.
얼띤感想文
바다는 모든 생명의 근원이다. 언어의 원천에 앞서 생물의 기원 바다, 움직였거나 꿈틀거리거나 번식과 진화의 과정에서 생존과 포식을 거듭한 결과 종의 그 끝자락에 선 인간 그 인간도 주어진 삶이라곤 단 몇십 년인 생 그들의 숨은 물속 닿은 깊이만큼 지상을 반영한다. 그러니까 경험이다. 아장아장 걷기로 저 뛰며 날며 낚고 채는 현실에서 살아남는 일은 그간 배운 것도 글이나 혹은 앞선 이의 반영은 있겠지만 무엇보다 쓰라린 경험만큼은 더 좋은 것도 없다. 석양 진 바다에 울긋불긋 튀어 오르는 저 정어리 떼 보며 무딘 발톱만 닦는다. 여러 수십 번의 익사와 여러 수십 번의 젖은 날개를 뒤로하고 다시 또 뛰어드는 저 붉은 눈빛은 앞으로 살날을 위해 고급 단백질을 구하기보다는 날쌔고 재빠른 저 싱싱한 몸뚱어리 하나 낚는 것에 대한 성취에 있다. 삶의 희망은 경험과 재치 그리고 정밀하지 않은 것 같아도 치밀한 움직임에서 깊숙이 꽂아 넣는 살 속 흐르는 핏기를 다만 느끼고 싶을 뿐이다. 팔딱팔딱 뛰는 심장이 아직도 허공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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