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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척을 지우며 소년이 걸어갔다 =박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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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509회 작성일 23-06-19 22:45

본문

인기척을 지우며 소년이 걸어갔다

=박성현

 

 

    회당에 들어서자 겨울이었다. 키가 불쑥 자란 소년은 문을 나서기 전에 어디로 갈지 결심했다. 지구본을 돌리면서 수없이 많은 장소를 기억했다. 손가락이 눈에 익은 아프리카의 초원을 가리켰다 구불구불한 흙길을 나무 수레가 지나가고 있었다. 루마니아의 옛집이나 페루의 새 무덤이나 빙하의 무겁고 단단한 방향은 어때 춥고 배고픈 지역이지만 무척 생생한 고향 같아요. 고향이 내게 있다면 거기는 어디였을까. 기억하렴 너는 네가 갈 수 없는 외국이야 그러므로 어디로 가야 할지는 소년만이 안다 화성에서 명왕성만큼이나 먼 길을, 입술을 굳게 닫고 온몸에 묻은 인기척을 지우며 걸어갔다. 그림자들이 철책을 지나 계곡을 넘고 히말라야까지 이어졌다. 소년을 쫓는 사나운 발자국은 점점 화석이 되고 까마득히 먼 훗날 발굴되기만 기다렸다. 소년이, 자신을 지우며 걸어갔다 대홍수와 빙하기를 지나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계간 시와정신 2021년 겨울호

 

   얼띤感想文

    어느 영화가 지나간다. 타임머신이다. 아주 가까운 과거에 잠시 들렀다가 아주 먼 미래로 가버린 어느 소년의 이야기, 시대는 대홍수와도 같고 빙하기도 수십 수백 번은 지나갔을 법한 어느 별의 이야기다. 달은 깨져 있었다. 가까운 미래라도 알고 싶어 우리는 먼 과거를 여행했다. 그곳은 눈에 익은 저 아프리카의 초원, 바오바브나무가 묵묵히 서 있는 그곳에서 하루 묵은, 내 발바닥만 닦았다. 아직도 나무 수레처럼 껄끄럽고 거칠고 무엇을 그리 실었는지 무겁기까지 한 짐에 히말라야만 바라본 건 아닐까! 그러나, 꾸준히 걸어라. 내 업보라 생각하고 걷되 비워라! 내 안의 화석 같은 궤짝을 뜯고 착착 쌓은 욕심과 번뇌를 드러내는 일, 기억하렴. 가벼움에 대한 미학에 관해서 그것은 느림이자 여유며 무관심에 가까운 무와 변화의 속도에 귀 기울일 수 있는 게으름이 아니라 고요와 안정을 찾는 것이다. 어쩌면 화성에서 명왕성만큼이나 먼 길일지도 모르는 내 안의 죽음의 싹을 지우는 길일지도 모르겠다. 龍飛御天歌가 따로 있으란 법이 있을까! 지옥이든 천당이든 훨훨 난 속세의 이 길 꼬깃꼬깃 구기어 툭 던져 넣은 회당, 내일의 봄을 위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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