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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前景-지붕 위의 눈 치우기 =나금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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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455회 작성일 24-09-04 20:56

본문

전경前景-지붕 위의 눈 치우기

=나금숙

 

 

    그날 그 길로 가지 않았다

    지붕에 올라가 쌓인 눈을 한 삽씩 쳐내야 했다

    편백나무 옆으로 써레는 신이 나서 눈 속을 달렸다

    둥근 굴이 생겨 새끼 여우가 드나들었다

    꼬리가 붉어서 멀리서 보면 꽃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당신에게서 받은 우수리나 나머지들이 미세먼지가 되어

    꽃이나 사물의 폐 속으로 스며드는 것이 보였다

    병에 모아져 팔려 나가지 않은 향은

    정원을 떠돌다가 들판으로 흩어졌다

    철책을 넘어 멀리 갔다

    여기는 맹추위의 저녁 무렵

    불꽃 나무를 찾는 눈보라 속,

    공중으로 천 갈래 만 갈래 길이 생기고

    나는 어느 길로도 가지 않았다

    지붕 위의 적설을 떼 내어 한 모금씩 마실 뿐이었다

    조종弔鐘이 한 번 길게 울렸다

 

 

   시작시인선 0506 나금숙 시집 사과나무 아래서 그대는 나를 깨웠네 029p

 

 

   얼띤 드립 한 잔

    전적으로 시 객체에 대한 묘사로 이룬 시다. 시제로 쓴 전경은 앞쪽 경치다. 내가 바라보는 그림이거나 사물을 바라보고 있다. 부제로 단 지붕 위의 눈 치우기지붕이란 집의 맨 꼭대기 부분이지만, 종이 지에 벗 붕이라든가 시렁 붕처럼 시 객체를 상징한다. 그러니까 지면이 남쪽을 가리킨다면 눈은 그 위다. 그날 그 길로 가지 않았다. 내가 뜻하는 대로 가지 않았다는 말이다. 지붕에 올라가 쌓인 눈을 한 삽씩 쳐내야 했다. 한 삽씩 쳐내는 일은 시 객체가 했겠지만, 그것을 바라보며 마치 시 주체가 행위를 한 것처럼 서술한 내용이다. 편백나무 옆으로 써레는 신이 나서 눈 속을 달렸다. 써레는 농기구의 일종으로 갈아 놓은 논을 고르는 데 사용한다. 편백나무에서 편백이란 시어를 보면 한쪽으로 치우친 느낌과 백지 아다다의 느낌마저 난다. 눈 속을 달린 기분, 이해할 만하다. 그것이 인식이든 불통이든 아무런 상관은 없다. 둥근 굴이 생겨 새끼 여우가 드나들었다. 둥근 굴, 마치 얼굴처럼 닿고 여우지만 새끼다. 여우라는 말에서도 동물적인 어떤 근성이 묻어나 있고 여좌가 아닌 여우라는 점에서 우측 세계관임에는 분명하다. 꼬리가 붉어서 멀리서 보면 꽃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붉다는 말은 아직은 감정이 묘하게 산 것을 묘사한다. 붉다는 것과 대치되는 말은 역시 희거나 검다겠다. 백과 흑은 죽은 것을 묘사한다. 당신에게서 받은 우수리나 나머지들이 미세먼지가 되었다. 우수리는 나머지나 잔돈을 말한다. 그렇지만 우수리에서 오는 한자 음을 생각하면 여러 가지 묘한 감을 불러온다. 꽃이나 사물의 폐 속으로 스며드는 것이 보였다. 지면에서 지구로 이전 상황의 묘사다. 병에 모아져 팔려나가지 않은 향이다. 나간 것이 무엇이었건 그건 향이라 명명하고 팔려나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시초의 형성 시기로 본다. 정원을 떠돌다가 들판으로 흩어졌다. 정원은 시 주체와 객체의 만남의 장소며 들판은 시 객체가 있는 지구다. 철책을 넘어 멀리 갔다. 철책은 시 주체의 제유다. 철이란 물질과 책을 생각한다. 어느 시인은 철학자라는 말도 사용한 이도 있는데 철학자에서 가지는 본뜻은 없으며 다만 시의 견고성이나 불변성을 대변한다. 여기는 맹추위의 저녁 무렵, 문이 열려 있는 상황이므로 추운 것이며 저녁이면 죽음의 직전을 묘사한다. 불꽃 나무를 찾는 눈보라 속, 공중으로 천 갈래 만 갈래 길이 생기고 나는 어느 길로도 가지 않았다. 불꽃으로 아주 열정적인 시 객체를 보는 것이 되며 천 갈래 만 갈래라는 길로 시 주체의 행방은 묘연한 것이 되었다. 그러니 시를 이해하기에는 어렵다는 뜻이겠다. 지붕 위의 적설을 떼 내어 한 모금씩 마실 뿐이었다. 거저 오면 오는 대로 느끼는 시 주체의 마음, 가면 가는가 보다. 조종이 한 번 길게 울렸다. 조종은 마지막을 상징한다.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뜻으로 치는 종이다. 그래도 그는 온몸 마뜩하게 떨게 한 무언가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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