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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고 싶은 시에 간단한 감상평이나 느낌을 함께 올리는 코너입니다 (작품명/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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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苦悲) =윤의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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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499회 작성일 24-09-14 21:16

본문

고비(苦悲)

=윤의섭

 

 

    비가 내리는데 실은 비가 오진 않아

    내심으론 늘 낙하지점이 생겨났고 피할 수 없이 젖어드는

 

    착각이라고 알면서도 비를 내리게 했다

    한 번도 스스로 내린 적 없다는 듯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물기가 언제부턴지 모르게

 

    긴 밤이 필요했다 내 알기로 물방울의 심장이 소진하는 비구름은 충분히 고통스럽다

    나는 내리지 않는 비와 이명이 만들어 낸 눈물 사이에서

    여전히 너를 겪는 중이다 긴 밤이 필요했다 소진은 충분히 고통스럽다

 

    이계를 사는 사람이란 이렇게 잊혀 있다 누군가 떠올린다 쳐도 누군지 모르는

    사람 비의 사막에 살며 유리창에 소라귀를 대 보는 사람

 

    영역을 알 수 없다는 고비라는 사막도 있지 끝없이 번지는 중이기 때문이겠지 이 생존은 어떻게 죽지 않았을까라는 우문에는

    미안해 나는 죽어 가며 사는데 이 말이 대답으로 들리면 도망쳐야 해 나는 아직도 비를 뿌리고 있어 메마를수록 잠기고 침몰하고 쓸리고 네가 종말처럼 사라져도 접시를 닦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널고 라디오를 켜고 베개를 가누고 사막화는 격렬해지겠지 오지 않는 빗소리를 강제로 볼륨 높이고 영원히 비가 올 거라는 일기 예보를 믿는 거지

 

    그런데 내가 미라가 되어 가도 비는 오지 않는다

    지극은 어디까지 요구하나

 

 

   민음의 시 264 윤의섭 시집 어디서부터 오는 비인가요 30-31p

 

 

   얼띤 드립 한 잔

    이 시를 읽으면 시인의 직분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하게 한다. 그들은 무조건 써야 하는 일이다. 그렇다고 아무렇게 갈기는 일도 아니다. 시라는 어떤 한 영역, 소라에서 미라를 만드는 일, 그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물론 어떤 감정이 일어 막 쓰지는 일도 있다. 가령, 인간사 격분한 어떤 일로 욕설과 같은 것도 혹은 몰래 찾아온 사랑으로 그 감정이 일어 대단한 작품으로 연결되는 예도 있겠다. 그러나 일상에서 좋은 글귀의 소재를 찾기란 여간 어렵기만 하다. 시는 그것을 설명한다. 접시를 닦고 빨래를 널고 라디오를 켜고 베개를 가누고 이렇게 한 번 뒹굴어 보고 저렇게 한 번 뒹굴어도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 낙하지점에 뇌진탕은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러니까 시인은 착각이라고 알면서도 비를 내리게 한 이러한 모든 행위로부터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그러나 써야 한다. 나는 가야 한다. 아직도 긴 밤이 요구되고 한차례 소나기를 퍼부을 작정으로 비구름을 모으는 일은 정말이지 고통스럽지만, 지극은 정성으로 간다. 시인께서 사용한 시어, 소라와 미라 돌림자 하나는 잘 맞췄다는 생각이다. 소라는 소랏과 연체동물도 있지만 부를 소에 펼칠 라 소라召羅와 징보다 작은 징을 뜻하는 소라小鑼도 있다. 징 라의 한자가 쇠 금자 부수변에 펼칠 라. 시를 읽고 느낀 점이 있다면, 정형화된 세계는 구질구질한 게 없다. 딱 몸 한 덩어리다. 살아 있으니까 구차한 게 많고 변고 또한 많다. 안 그랬으면 좋겠는데 하는 것들 참 많다. 그러므로 노인이 되면 오히려 간소하며 가진 것 또한 없이 있는 것이 오히려 더 애착이 가고 아련하다. 무엇을 가지려고 나서거나 집착은 주위 사람으로부터 꽤 성가시게 하며 예우 또한 받기가 힘들다. 점점 나이 들수록 정말 버릴 것이 무엇인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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