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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시간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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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523회 작성일 24-10-21 21:26

본문

가난한 시간

=김경수

 

 

빈집에 놓인 탁자에 빈 물병을 놓으면 허물 벗은 시간이 뛰어 들어간다. 시간을 가두어 둔다고 해도 지하 철도 개찰구에 카드를 대면 문이 열리고 내가 붙잡고 있던 시간들이 잘게 부서져 날아간다. 시간은 물고기이다. 잡으면 미끄러져 달아나는, 다친 새가 시간의 알갱이를 정확히 쪼고 있다. 슬픔에는 방향이 없다. 단지 가슴 상처의 깊이만 있을 뿐이다. 다시 바라보면 시간은 가난하고 불쌍하게 보인다. 가난한 시간의 뒤를 따라 걸어가는 사람들이 재가 되어 날려 간다. 날아간 시간을 찾으러 집 밖을 나선다. 여행기旅行記의 사진이 시간을 잠시 잡아둔다. 시간이 들고 있는 햇살이 하프harp를 연주한다. 먹구름 아래에서 비를 맞으며 덕수궁 대한문大漢門앞에서 열한 시가 열두 시를 만나 수문장守門將교대를 한다. 시간을 내동댕이쳐 봤자 시간은 바로 튀어 시계 안의 제자리에 가 앉는다. 그러나 시간을 만나는 일은 아름다운 일이다. 침묵 속에도 강물이 흐르고 꽃잎이 흐르기 때문이다. 시간을 택시에 태울 수는 없다. 시간은 항상 헤어질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 천 개의 발을 가진 시간을 보면 눈물이 난다. 도마 위에 놓여 있는 토막 난 물고기는 앞만 보고 달려가는 시간의 흔적이다.

 

 

   시작시인선 0502 김경수 시집 이야기와 놀다 24-25p

 

 

   얼띤 드립 한 잔

    시제 가난한 시간은 빈약한 마음을 상징한다. 시간은 시와 그 거리감 혹은 간격과 같다. 그러니까 시 간詩 間이다. 빈집에 빈 물병처럼 하루를 대한다. 무엇을 담을 것인가? 생각해 보면 하루의 허물은 시간으로 점철되어 있고 그 시간을 파헤쳐 잘게 다져 시로 남긴다면 이보다 더 멋진 일기는 없을 것 같다. 그러므로 마음은 늘 가난하다. 가난이 있기에 그 가난을 메꾸기 위해서 시간을 두고 지하 철도 개찰구에 카드를 댄 것처럼 마냥 그 카드에 의존하는 일도 생기는 법이다. 카드를 생각하면 네모지다. 네모가 갖는 상징적 어감은 책에 가까울 정도로 눈에 서린다. 시인은 더 나가 시간은 물고기라 명명한다. 에서 어로 닿는 고행길이다. 잡으면 미끄러져 나가고 방향은 뒤죽박죽이다. 그러므로 슬픔은 묻힐 곳 없어 하늘을 날며 시간의 알갱이를 쪼는 가난만이 있다. 다시 바라보면 불쌍하기 짝이 없다. 그 가난을 쫓다 보면 어느새 사람은 재가 되어 어리다가도 여기가 집인가 싶다가도 여기는 햇살처럼 잠시 닿았던 하프의 연주만 있었다. 하프는 악기 이름이기도 하지만 반이란 뜻에서 반을 떠올리게 하며 뒤쪽의 개념까지 포괄한다. 하프백halpback으로 센터와 역행이다. 먹구름 아래에서 비를 맞으며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열한 시가 열두 시를 만나 수문장 교대를 한다. 검정을 상징한 먹구름과 아니거나 견줄 비에 덕수궁, 덕이 물처럼 흐른 궁벽 그것은 중심을 은유하며 시적 주체가 될 것이다. 열한 시 젓가락처럼 쌍을 이룬 현실과 가상은 열두 시 시적 일체를 이루는 길 그것은 수문장 교대처럼 타산지석他山之石이거나 반면교사反面敎師이거나 거울에 낀 이끼이겠다. 그러므로 시간을 내동댕이쳐 봤자 시간은 바로 튀어 시계 안의 제자리에 가 앉는다. 시계詩界, 시력이 미치는 범주다. 그렇다 하더라도 시간을 만나는 일은 아름답다. 침묵 속에서도 강물이 흐르고 꽃잎이 흐르기 때문이다. 강물이 큰 맥을 형성한다면 꽃잎은 그 위에 소소히 타고 가는 소시민과 같다. 시간을 택시에 태울 수는 없다. 유난히 택시를 좋아하는 시인이다. 가릴 택에서 가려 싣는 마음을 상징한다면 개찰구는 멀기만 할 것이다. 시간은 항상 헤어질 준비가 되어 있으며 천 개의 발로 토막 난 물고기의 눈물을 볼 것이다. 시간의 흔적을 잠시 뜯어보는 개찰구 여기에 잠시 머물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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