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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의자 =강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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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444회 작성일 24-10-29 21:14

본문

빈 의자

=강 정

 

 

    가만히 놓여 있는 의자 위에

    조금 전 내가 앉아 있다 일어난 의자 위에

    아무도 앉아 있지 않으나

    아무도 앉아 있지 않은 그대로 명백한 의자 위에

    아무도 볼 수 없는 누가

    앉아 있는 의자 위에

    햇빛이 사각으로 금을 긋고

    잿빛 그늘이 누군가의 얼굴로 틈을 내는 의자 위에

    틈 사이에 빛의 보풀이 일어

    나보다도 훨씬 이전 여기 앉아 있던 사람들이

    떠도는 의자 위에

    침묵이 뚜벅뚜벅 말을 걸어

    채 다 쏟지 못한 소리들을 더 큰 말의 그림자로 드리우는 의자 위에

    다리가 여럿인 벌레 한 마리

    두리번두리번 시간을 삼키다 사라지는 의자 위에

    그렇게 스스로 허공을 걸어다니다

    더 먼 곳 사람들을 불러오는 의자 위에

    갑자기 시끄러워지는 의자 위에

    불현 듯 집 바깥에서 이곳을 바라보는 의자 위에

    사과 한 알을 놓으면 그대로 커다란 눈이 되는 의자 위에

    그것은 있다, 뭐라 말할 수 없는 그것이 있다, 그 무엇도 될 수 있는 그것이 있다

    그것이 앉아 있는 빈 의자

    의자는 그것이고,

    의자는 여전히 의자 아닌 비애의 각도이다

 

 

   문학동네시인선 211 강 정 시집 웃어라, ! 072-073p


   얼띤 드립 한 잔

    예전 시 공부할 때였다.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떠 오른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문장을 제발 좀 끊어라! 이게 뭔 글이냐? 그렇다. 문장이 꽤 길고 번거롭다. 그렇지만, 시니까 가끔은 짜증이 난다. 시니까! 의자는 시 객체다. 육체가 걸터앉든 마음이 걸터앉든 등받이가 있는 가구임에는 틀림이 없겠다. 이 의자에 대한 꾸밈의 글들 그러니까 의자와 망자의 관계다. 망자는 거저 의자의 상황을 읽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까 의자는 조금 전 내가 앉아 있다가 일어난 그 의자였으며 거기에는 아무도 앉아 있지 않았다. 그 의자는 아무도 볼 수 없는 맹인과 같았으며 햇빛마저 사각으로 금을 긋고 있다. 사각死角은 어느 각도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금을 긋고 있다는 말은 망자의 뜻대로 움직이지는 않고 다른 방향으로 이전한 사고의 진행 같은 것이겠다. 그것은 잿빛 그늘이 될 수 있으며 누구인지는 모르나 모르는 사람을 그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그것은 나보다도 훨씬 이전에 다녀간 사람일지도 모른다. 잠시 침묵이 흐르는가 싶다가도 아주 큰 말을 타고 오는 그림자까지 몰고 오기도 하는 의자다. 다리가 수없이 놓이다가도 다리가 수없이 철거되기도 하겠지만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삶의 현장이다. 그렇게 망자를 보며 허공을 딛는 시간,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지만 이미 피안은 시끄럽기 짝이 없고 분주하기까지 해서 여간 잠을 이룰 수가 없다. 그러다가 사과 한 알 놓이는가 싶다가도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언뜻 놓인다. 정말 놀랍기 짝이 없지만 이것 또한 비애의 각도임에는 틀림이 없는 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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