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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아주머니 =최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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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532회 작성일 24-11-21 21:14

본문

고향 아주머니

=최금진

 

 

    고향 아주머니는 이제 늙었다 몇 개 안 남은 이빨로

    어머니와 맛나게 고기를 뜯었다

    나는 순식간에 겨울이 가고 말았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핀 난초잎만 매만졌다

    아주머니는 인자한 얼굴로 나를 보고 웃었다

    평생 칼국숫집을 하던 분이었다

    칼국수에 칼이 들어 있으면 좋겠다는 내 증상을 알던 분이었다

    어머니가 고갯짓을 하셧고 나는 크게 꾸벅 인사를 하였다

    마흔두살 먹은 사내가 할 인사는 아니었다

    고향 아주머니가 자식놈들 주라고 만원짜리를 꺼냈다

    기나긴 겨울 가고 나니 얼마나 좋으냐고

    내가 당황해할까봐 그렇게 묻지는 않았다

    몸은 건강하시냐고, 다들 무탈하시냐고, 나는 그저 속으로만 물었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 무슨 끈 하나 풀린 것 같은

    나보고 금진아, 금진아, 하는 게 어딘가 쓸쓸하였다

    고향은 이제 늙었다, 흰머리가 털모자 사이로 잔뜩 삐져 나와 있었다

    어디 살든 잘 살고 있으면 되는 거라고 하지만, 지난 겨울에 나는 겨우

    한글을 막 뗀 아이처럼 남쪽에서 내리는 눈송이 몇 개를 읽게 되었다

    뜯고 난 닭고기 뼈가 겨우 네댓 개 쌓였고

    고향 아주머니는 내일 간다, 너무 멀어서 다신 못 올 것이다

    우리가 살면서 또 언제 보겠냐고 어머니와 손을 마주잡았다

    어머니도, 고향도, 마치 처음부터 세상에 없었던 것처럼

    이불 속에 누워 오지 않는 낮잠을 잤다

    나는 적절하고도 옳은 일이라 믿고 싶었다

 

   창비시선 336 최금진 시집 황금을 찾아서 64-65p


   얼띤 드립 한 잔

    고향 아주머니는 일가친척을 이룬다.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만남은 시처럼 껄끄럽기만 하다. 왜 왔을까, 아무래도 옛정이 그리워 죽기 전 한 번 찾아왔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고향 아주머니를 뵙는 시인은 속은 그리 편하지 않지만 그리 편하지 않은 관계를 난초 잎이라 묘사해 놓고 있다. 물론 난초는 식물이지만 식물처럼 자리에 박혀 어렵기만() 하고 넘어야() 할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아주머니는 옛정은 잊었는지 그저 일가를 이룬 것에 마냥 반갑기만 하다. 나를 보고 웃었기 때문이다. 아주머니는 평생 칼국숫집을 했다. 그러니까 칼국수처럼 속에 칼을 품고 산 것이며 칼처럼 날카로웠던 존재였으며 국수 면발처럼 딱딱하고 하얀 민낯이었기에 기어코 도움 하나 주지 않으셨던 분인 것도 사실이었다. 나는 칼이 들어 있는 모양으로 인사를 했고 어머니는 그러지 말라는 듯 넌지시 귀띔이라도 하듯이 눈치를 주고 계셨다. 사실 마흔두 살이나 먹은 사내가 인사할 모양새는 아니다. 고향 아주머니는 자식놈들 주라고 선뜻 만 원짜리를 꺼냈다. 만원에 담긴 속뜻은 가득한(滿) 마음이자 원만한() 테두리를 이루자는 뜻인 것처럼 평화의 상징을 내민 셈이다. 아주머니는 마침내 기나긴 겨울이 다 간 것처럼 얘기하셨지만 우리는 그렇지가 않았다. 묵은 감정은 여전히 깊게 쌓여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 무슨 끈 하나 풀린 것 같은 지난 세월을 생각하자면 고독하고 쓸쓸하고 외로운 나날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고향은 케케묵은 발상이자 과거의 이야기가 되었다. 흰머리가 나 있었고 털모자처럼 잔뜩 의구심마저 덜었지만, 이제는 우리와 관계없는 먼 일가고 어디든 살아가실 것이고 지금, 이 시각이 지나면 또 어디든 갈 것이다. 나는 한글 막 뗀 아이처럼 고향은 생소한 단어가 되었지만 진정 따스하게 살펴야 할 것은 진정 쪽 남에 있음을 말이다. 그것은 청출어람靑出於藍이겠다. 쪽에서 뽑아낸 푸른 물감이 쪽보다 더 푸르다는 마음 하나로 꿋꿋하게 살아야겠다. 나는 이것이 더 옳은 일이라 믿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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