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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여 쓰게 된 가계부 =김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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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564회 작성일 24-12-20 21:34

본문

사랑하여 쓰게 된 가계부

=김선우

 

 

고기를 먹어야 합니다의사가 말했다

알겠다고 했지만 하지 않았다

 

고기를 먹어야 해요당신이 말했다

알겠다고 말한 순간부터 노력하기 시작했다

 

당신이 사 온 것을 소분해 냉동실에 넣고

이틀에 한번씩 꺼내 약으로 먹는다

 

당신을 사랑하여

다른 목숨에 지는 빚의 총량이 커지고 말았다

 

어떤 일을 더 하거나 덜 하며 살아야 할지

매일의 석양 아래 가계부를 쓰게 되었다


   창비시선 461 김선우 시집 내 따스한 유령들 26p

 

   얼띤 드립 한 잔

    사랑은 어떤 대상을 전제로 한다. 혼자 집에 기거하지는 않는다. 물론 시의 바탕이다. 가계부라는 시어에서 풍기는 맛은 집안 살림의 나가고 들어오는 계산적 부기다. 그 부기가 꼭 부기처럼 들리지는 않는다. 항상 그렇듯이 균형은 맞지 않고 맞지 않은 대사에 늘 곤욕을 치른다. 그러므로 고기는 항시 내부를 다지는 단백질이자 원기다. 높을 고에 기운 기처럼, 북을 지향한다. 의사가 의사이든 혹은 의사든 사랑은 오고 그 사랑에 고기는 삐딱하게 널려 있고 소분 아닌 소분에 잠시 얼어 있다가 이 틀에 끼어 맞춰보는 일로 늘 즐겁기는 하다. 그러나 다른 목숨을 쥐고 흔드는 일 같아서 살림은 늘 風飛雹散이다. 그래도 나는 좋다. 오늘이란, 이 시간만 나에게 주어져 있으니까, 석양은 늘 그렇게 붉고 가계부는 또 그렇게 작살이지만 잠시 살아 있었다고 위안한다. 그러고 보면 나 예전은 참 조용한 아이였나 봐, 누가 읽으면 지랄 염병하네 하겠지만, 그 지랄도 총량이 있다는 것, 너스레 떨다가 시간을 참하게 쓰는 고기 한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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