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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어 나온다 =박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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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551회 작성일 24-12-25 20:32

본문

새어 나온다

=박라연

 

 

    동물의 눈에서만 마음이 새어 나오나?

    식물의 뿌리에도 피비린내 숨어 있다 살아 있다는 것은

    마음이 헤맬 때까지다

 

    들녘의 뿌리들 강자에게도 흔쾌히 악수한다

    바람과 비와 햇살 그 지극함을 느낄 때

    몸도 바꿀 수 있다

 

    한순간에 히아신스가 되기도 한다

    한나절이면 향기만으로 강자의 코 납작하게

    할 수도 있다 빼앗긴 마음도

 

    돌아올 수 있다 상상 숭배론자에겐

    추앙할 때 번지고 스미는 세계가 있어서

    당분간 금식도 가능해

 

   문학과지성 시인선 577 박라연 시집 아무것도 안 하는 애인 11p

 

   얼띤 드립 한 잔

    변화하는 환경에 대한 적응은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추론에 있다. 식물처럼 앉아 있어도 피비린내 나는 삶의 현장은 자족적이고 유기적인 피에 고스란히 묻어 있고 바람과 비와 햇살 그리고 그 지극함으로 닿는 들녘의 뿌리가 어디로 흐르는지 알 수 있을 때 동물의 눈은 비로소 움직인다. 향기 가득한 강자의 세계에 닿는 길은 상상 숭배론자만이 가질 수 있는 길, 몸과 마음도 히아신스처럼 피어 있겠지만 금식은 오로지 뱀처럼 날름거리는 눈에 있겠다. 이때 금식은 금식禁食이 아니라 금식金識이다. 어법에 맞는 말은 識金이겠지만 다음. 새어 나온다는 말은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기체가 될 수도 있으며 액체가 될 수도 있다. 혹은 어떤 소리일 수도 있는 것이다. 동물의 눈은 식물의 뿌리를 들여다보고 있다. 정말 피비린내만 진동하는 세계다. 산다는 것 살아 있다는 것은 떨어지는 칼날에 온몸 다 찢기어 나가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데 있다. 산처럼 높은 파도가 밀어도 배가 뒤집혀 파편이 되어도 중요한 것은 버릴 것은 버리고 아예 다 버린 상태에 이르렀겠지만, 남은 파편 한 조각에 의지하는 강한 정신력에 있다. 돌아올 수 있다. 돌아와야 한다. 돌아와 애면글면 장만한 집 안팎 굴도리에 부연까지 칭칭 감은 그 고래 심줄에 목매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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