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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꽃 =유병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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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508회 작성일 25-01-11 20:34

본문

검은 꽃

=유병록

 

 

    죽은 자의 폐에서 발견되는 다량의 흙은

    산 채로 매장된 흔적

 

    산 자의 기억과 죽은 자의 꿈이 뒤섞이는 자정의 세계에서

    눈 감으면

    검은 구덩이에 파묻히는 느낌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검은 공기가 밀려들며 목구멍을 가로막는다

 

    벗어나려 애쓸수록 숨통을 잠식하는

    검은 모래는

    쌓이고 쌓여 비탈을 만드는 습성이 있다

 

    점점 폐활량이 줄고

    기침의 순간을 지나 침묵에 다다를 때

 

    검은 구덩이는 내가 팠다는 생각

    대낮의 소란이 나를 일으켜

    구덩이 밖으로 꺼낸다면

    누가 내 가슴을 열어 비탈을 발견한다면

 

    자, 받아라

    검은 꽃 한송이

 

    창비시선 371 유병록 시집 목숨이 두근거릴 때마다 18-19p


    얼띤 드립 한 잔

    시를 대하는 마음은 늘 어렵다. 그건 먼저 끄집어내려고 하는 욕심 때문이다. 한 톨의 먼지와 같은 때라도 있으면 벗어야 한다. 사심이 없다는 것, 이를 보이는 방법은 기다림이다. 아홉 시가 열 시가 될 때까지 다량의 흙은 산 채로 매장한 것처럼 흔적을 보이면 안 된다. 산 자의 기억은 죽은 자의 꿈을 받아들일 때 아니 더는 죽음이 없을 때 검은 구덩이는 온기처럼 되살아난다는 것을 미쳐 깨닫기까지 자정하였으니까. 저기 저 흐르는 검은 꽃을 보며 애써 숨통을 조이려고도 하지 마라. 비탈은 다만 잡초로 우거졌을 뿐이라고 그렇게 만드는 습성이라고 그리 좋지도 않은 폐활량을 지금 이 순간 늘이기로 한다. 아침이면 늘 검은 꽃이 피어 있었다. 창도 없는 점심도 없는 그런 골방에 앉아 저 멀리서 흐르는 죽음의 향기만 오롯이 피어 있었다. 구태여 맡고 싶지 않음을 뒤늦게 알았다는 사실, 예전은 몰랐다는 거 포물선처럼 부푼 무지개 동산에 다채로운 색상을 볼 수 있다는 거 저게 모두 죽은 자의 폐에서 나왔다는 걸 알지 못했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목구멍은 마르고, 무엇이었을까? 이 촉촉한 감정마저 앗아간 이가 그리 깊지도 않은 동굴은 사포처럼 껄끄럽기만 해서 검은 꽃 꽃잎 한 잎을 곱게 떼어 이 더러운 목구멍을 이제야 닦아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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