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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고 싶은 시에 간단한 감상평이나 느낌을 함께 올리는 코너입니다 (작품명/시인)

가급적 문예지에 발표된 등단작가의 위주로 올려주시기 바랍니다(자작시는 삼가바람) 

12편 이내 올려주시고, 특정인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가을 물고기/ 황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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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콩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684회 작성일 25-05-22 11:20

본문

가을 물고기/ 황유원

 

 

 

너는 추어탕의 추어가

가을 물고기냐고 했다

나는 아마 ‘미꾸라지 추’자에

‘물고기 어’ 변이 달렸을 거라며 말끝을 흐렸는데

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추어는 가을 물고기가 맞는 것도 같았고

해 지는 가을의 쓸쓸한 논두렁 아래를

어슬렁어슬렁 헤엄치는 미꾸라지가 떠오르기도 해서

갑자기 나까지 쓸쓸해지는 것이다

지도 교수님과 어느 선배랑 가끔 가던 동대 쪽문 쪽 추어탕집

거기서 추어탕에 소주 먹고 나와 둘이 피우던 담배 연기가

눈앞에 피어오르는 것이다

나는 다라이에 가득 담긴 미꾸라지를 보며

어떤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슬픔을 느꼈고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남을 죽여야 하므로

사랑 같은 소리는 다 개소리라고 생각하며

선배에게 끊었던 담배 한 대 빌려서 함께 담배를 피웠던 것이다

그날 점심때 소주를 한 병은 마셨던 것 같고

나는 지도 교수님을 좋아했는데

결국 내가 모든 걸 망쳐버린 것 같고

다시는 있을 것 같지 않은 그날의 풍경은

내 마음속에서 이렇게 영원히 상영되고 있는 것이다 꺼지지 않는 담배 연기처럼

비워지지 않는 소주병처럼

나는 추어탕에는 역시 소주지라고 말했고

너는 다라이에 담긴 미꾸라지를 본 기억 때문에

추어탕을 잘 못 먹는다고 말했다

나는 가을 물고기가 다라이 속에서 가을과 함께

저물어간다고 말했고

이 모든 것과 무관하게

나는 지금 혼자 김오키의 라이브 영상을 틀어놓고

네가 마켓컬리로 주문해준 추어탕에 없는 소주 대신 장수막걸리를 먹고 있는데

장수막걸리는 교수님이 가장 자주 드시던 술이었는데

나는 다라이에 담겨 저물어가는 한 마리 미꾸라지가 된 심정으로

오늘 아침 너와의 대화를 떠올리는 것이다

대화 속을 헤엄치던 가을 물고기를 잡아보는 것이다

이 슬픔은 장수할 것이다

이 사랑도 장수할 것이고

사랑 따위는 미꾸라지처럼 뼈째 갈려버릴지리도

오늘 이 색소폰 소리는

감미로운 먼지 같고

뼈째 갈려도 기어코 사랑하려는 먼지가

천천히 휘날리는 것 같아

세상에서 가장 비천하게 놓인 고무 다라이 위로

불어오는 색소폰 음색은 스산한 가을바람 같았어

몇 가닥 긴 수염 느리게 흔들며

흐린 논두렁 내장 속까지 노을이 스미고 있었어



(시감상)


선암다리를 건너면 민물고기 식당이 전단지처럼 날린다. 신혼의 어느 날, 첫애를 임신한 아내에게 붕어진액이 좋다는 소문을 듣고 방문한 적이 있었다. 물 반 고기반이라는 말이 있듯 대야에 강물처럼 흘러넘치는 붕어들, 아등바등거리며 목숨줄에 기댄 거무스레한 등지느러미를 보며 한때 할머니의 모시적삼처럼 슬픔이 밀려왔다. 슬픔은 가끔 일시정지된 화면이었다가도 변덕꾸러기처럼 금세 표정을 바꾸기 일쑤다. 애꿎은 날, 불멍 하듯 멍하니 있을 때 슬픔은 추억으로 융해된다. 소매에 숨겨 놓은 칼날처럼 명치를 찌르는 해묵은 기억의 그림자.


(시인프로필)


1982년 울산 출생. 시집 『세상의 모든 최대화』 『이 왕관이 나는 마음에 드네』 『초자연적 3D 프린팅』 『하얀 사슴 연못』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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