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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러너 =김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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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65회 작성일 26-04-09 22:07

본문

가을의 러너

=김중일

 

 

    가능하다면 멈추지 않습니다. 달리는 것보다 멈춰 서는 것은 엄청난 스피드가 필요하니까요. 찰나라도 가을을 멈춰 세우려면 다음 가을로 세월보다 빨리 달려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가능할까요......아직 봄 같은 가을에

    혼자 우는 멍투성이 아이 앞에 잠시 멈췄을 때 뛰는 내내 풍절음을 내며 덜컥이던 가슴팍을 확 열어젖히고 심장이라는 쳇바퀴를 돌고 돌던 다람쥐들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다람쥐들과 함께 낙엽들이 울컥 물밀 듯 흘러나왔습니다. 혼자 우는 아이의 눈높이에 딱 맞게. 남쪽으로 흘러가는 강물처럼 흘러가는 낙엽들에 빠져 허우적대며 나의 다람쥐들이 떠내려갑니다.

 

    낙엽들의 수심이 깊습니다. 가문 땅이 갈라지듯 잎맥이 퍼진 낙엽들이 흘러갑니다. 건조한 가을의 허공이 쩍쩍 갈라집니다. 그 속에 침몰한 나무들이 많습니다. 최대한 멈추지 않으려 합니다. 가라앉지 않으려 노를 젖듯 부드럽게, 물 흐르듯 바람 불 듯 두 다리를 교차합니다. -리듬이 중요합니다 최대한 가라앉지 않으려 합니다 가라앉는 것도 그리 쉽지는 않지만 불가능하진 않습니다 가능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가라앉는 것이 결코 불가능하지는 않아요 불가능하지 않은 일을 불가능하게 하는 건 꾸준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아이를 잃고 멈추고 가라앉아버린 페이스를 잃은 내 러닝메이트가 알려주었습니다. 깊은 수심의 바닥에 깔린 모래자갈처럼 별이 빛나는 가을 밤은 인공위성을 발사하기에 최적입니다. 한해의 슬픈 일들을 하나하나 카운트다운, 죽은 아이들을 태우고 붉은 낙엽들을 지상으로 쏟아내며 기체가 발사됩니다. 대기권을 벗어나며 겨울이 분리되어 지상으로 추진체처럼 떨어집니다. 그 겨울의 잔해를 찾으러 가을의 요원들이 출동했습니다. 전쟁터의 아이들도 타고 있던 기체의 끝단이 궤도에 진입한 걸 확인하고 다시 뜁니다. 영원히 머리 위를 돌고 돌 겁니다.

 

    가능한 한 최대한 멈추지 않습니다. 이 가을을 멈추는 건 엄청난 스피드가 필요합니다. 가령 가을을 찰나라도 멈춰 세우려면 겨울의 러너, 봄의 러너, 여름의 러너를 싹 다 이겨야 합니다. 그건 여름에 앞서가는 가을을 앞서가는 겨울을 앞서가는 봄을 앞서가는 여름을 앞서가는 가을에 하는

    가위바위보와도 같습니다. 그게 가능할까요? 올해 크리스마스의 공습 속에 네 살 아이가 있었듯 솔직히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서로 러닝메이트인 매 계절의 러너들이 죽은 아이들 앞에서 자꾸 멈춰 서니까요. 그래서 불가피하게 엎치락뒤치락 계절의 순위가 뒤섞여 어떤 해는 내내 귀가 먹먹한 봄이기도 한 여태 봄을 달리는 가을의 러너보다 빠른 인공위성은 없습니다.

 

 

    창비시선-534 김중일 저 차원이동가능 12-14p



    얼띤 드립 한 잔

    그래요. 가을처럼 달리고 싶습니다. 여기서 달린다는 말은 읽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읽는다는 것은 살아 있음이고 삶이겠지요. 가능하다면 멈추지 않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시제 가을의 러너는 무엇을 상징했는지부터 가름하는 일이 먼저일 겁니다. 그렇지요 겠지요 뭐, 그러면 가을에 속한 무수한 시어들이 많이 나옵니다. 가령 아이가 먼저 떠오르네요, 아이는 가을에 속한 각종 시어가 맞을 듯합니다. 낙엽이라든가 다람쥐라든가 흔히 시간을 상징하는 강물까지도 가을에 속합니다. 언제나 가을의 아이들은 눈높이에 딱 맞게 서고자 합니다. 아니지요, 불가능한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 수 있도록 어쩌면 반추와 사고력에 있을 듯도 하겠군요, 눈높이에 다다를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이렇게 글 쓰는 와중에도 배달이 완료됐다고 하는 저 기계음만큼은 솔직히 끔찍합니다. 저것도 가을에 좀 집어넣었으면 하고 싶을 때도 있어요. 그렇다고 이러한 모든 것들이 무작정 남쪽으로 흘러가지는 않겠지요. 남쪽 그리고 북쪽 가을에서는 늘 이런 방향을 제시하곤 합니다. 그 방향이 어느 쪽이든 크게 관계는 없습니다. 네 얼굴을 내 얼굴을 볼 수 있는 거울과도 같아서 말이예요. 하여튼, 가을과 여러 아이 그리고 가문 땅과 잎맥이 있듯이 어떤 나목에도 이름을 부여하려면 봄과 여름과 겨울을 온통 지나야 할 듯해요. 그러니까 세월보다 빨리 달려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멈춰 서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그건 죽음 아닐까요. 죽음을 좋아하는 이는 없을 테지만 가을은 예외입니다. 죽음의 고장이자 또 그 죽음에서 새 생명을 부여하기도 해서 어쩌면 가을은 참 멋있는 계절이라 생각이 듭니다. 가을을 좀 더 멋있게 치장하려면 뭐가 필요할까요? 그렇지요 리듬이지요. 리듬 타는 가을만큼 한동안 잊히지 않는 것도 없을 거예요, 금방 죽어버리겠지만, 죽어도 잊지 아니한 것은 그 리듬이 불러오는 가을의 아이들이 아닐까요! 가을을 살 수 없어 간혹 우주에 가 가을을 잠깐 열람하기도 해서 조금은 죄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이 가을로 해서 한동안 고독한 마음을 잠시 죽일 수 있었던 건 사실이에요. 여기 대기권에는 아무도 없어요. 환풍기 돌아가는 소리와 각종 기계음만 난무하거든요. 깊은 수심의 바닥에 깔린 모래 자갈처럼 별이 빛나는 가을밤은 인공위성을 발사하기에 최적이듯이 주섬주섬 가을의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호주머니 속을 뒤져보기도 하고 또는 채워보기도 해서요. 이것은 마치 가위바위보와도 같아요. 함께 어울리는 게임 같거든요. 여기 북반구에는 크리스마스가 겨울이고 그것은 또 하나의 성탄을 알리듯 기승전결에 가까운 네 살(덩이) 아이가 있듯 이제는 멈춰 서 현실로 안착할까 봅니다. 잠시 가을의 러너와 함께 죽 쏘아 올렸던 인공위성은 여기서 산화합니다. 아무튼 씨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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