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김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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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김수우
깨진 플라스틱 화분에서 겨울을 버틴 어린 동백을 아침이라 부르자 '옥황장군' '용궁대신' '서보살' 점바치 골목 간판들을 아침이라 부르자 누군가의 가난, 누군가의 혁명이 네 거름이었다면
그래 거기를 아침이라고 부르자
아미동 비석마을 담벼락에 쌓인 박스들도, 빈 가게를
지키는 금 간 간판도, 돼지국밥집에 노동자들 몰고 들어서는 저녁 바람도, 아득한, 아무리 걸어도 바닥 닿지 않는 어둠도
아침처럼 대답할 것이라
슬프면 돌아오고 있을 사람을 생각하고 그래도 슬프면 그의 지팡이를 기억하고, 아프면 백과사전에서 폭탄먼지벌레를 찾아보고 또 아프면 해부학 사전도 뒤적이고, 힘들면 순간을 그 압축을 보고 더 힘들면 영원을 그 팽창을 보고
막다른 골목에 무료로 배송된 붉은 단풍잎도, 바벨탑에서 떨어진 시인의 가난한 골절상도 다 아침이라고 부르자 아침이라는 호명으로
우리가 아침이 될 수 있다면
긴 죽음에서 돌아온 듯 문득 눈 뜨니
창틀마다 아침이 꽂혀 있다 단검처럼
얼띤 드립 한 잔
가난은 글을 불러온다. 글은 해결해 줄 수 있는 처지는 못 되나 글은 이 지옥 같은 아침을 잠시나마 일깨우며 북돋는다. 글은 죽음의 바퀴를 굴리면서 죽음 이전과 이후를 상상한다. 글은 어디쯤에서 나를 인도하며 나의 하루를 온전히 채울까? 그러니까 글은 나의 오래된 친구이자 스승이며 아버지다. 하지만, 아침을 보면 나는 허약하고 요령이 없으며 면역력 또한 없다. 죽음을 코앞에 두고 붉은 단풍잎 그리며 바벨탑에 올라 빅뱅과도 같은 꿈만 그린다. 옥황장군, 용궁대신, 서보살, 점바치여 아! 금 간 간판이여 돼지국밥집 몰려든 그대 노동자들이여 삶은 뉘를 위한 것이었던가! 울음을 참지 못해 결국 바닥을 긁나니 손톱으로도 가릴 수 없는 깨진 변기여 글은 그렇게 오랫동안 나를 보필하며 피 흘린 하루를 닦는다. 그렇다고 가난을 영원히 지울 수 있으랴 깨어나 앞마당 보면 감나무가 서 있고 그 가지 위 까마귀 앉아 울고 있으니 가난의 태생을 먼저 조사하고 그 근본적 원인을 분석하는 일이다. 가난은 비쩍 마른 뼈다귀 때문일까, 아니면 알코올 남용과 같은 마약 중독과도 같은, 아니면 전염병이나 나쁜 날씨에 기인한 것일까? 가난은 어디서 태어나 이웃하며 무엇을 섬기느냐 말이다. 내부적인 요인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보이나 그렇게 보지 않으려는 습성을 지닌 이 가난은 분명 내부적이며 외부적인 탓으로 돌릴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가족이 있느냐 가족이 있으면 함께 의논해 가야 할 일, 옥황장군이 아니라 독불장군으로 설친 건 아닐까! 한 끼 밥을 먹지 못해 국수를 먹고 어느 시인은 이를 이태리어로 마카로니라 했다. 먹기 쉬운 나의 叛亂性이다. 가난은 국수처럼 희고 곧으며 뜨거운 열기를 품으면 허우적거린다. 그만큼 중독성이 강하다는 말이다. 아침을 기대하나 아침은 가난으로 곤란에 처하고 진정 아침이 될 수 있다면 창틀마다 꽂혀 있는 각종 단검은 지옥의 장식품이 아니라 공자의 명언처럼 누군가의 힘이 될 수 있는 날 그런 날을 학수고대한다. 가난아, 가난아 이 멀대 같은 가난아 어여 물러가거라, 가서 바벨탑에 올라 돌 하나 얹히고 다시는 돌아오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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