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과 소주를 =전동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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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과 소주를
=전동균
개뿔, 영하 12도면 어때, 오대산에나 가자는 거야 동피골 골짜기에 가자는 거지 외딴 폐가 지나서 쩡쩡 터지는 고드름 소리, 얼어붙은 멧돼지 발자국 따라 따라서 얼음폭포 앞 눈사람 보러 가자는 거지 땅에서 솟아난 듯 찌그러진 머리, 눈도 삐뚤 입도 삐뚤한 그 앞에 미친 척 삼배 올리고, 올리는 시늉이나 하고, 소주 한잔하자는 거야 눈사람은 금세 얼굴이 벌게지겠지 요즘 사는 게 왜 이 모냥이냐, 투덜투덜 대겠지 연거푸 깡소주 몇 잔 들이켜고는 제길, 눈을 반쯤 감고서는 느닷없이 ‘모란동백’을 부르기도 하겠지 우리는 술 취한 척 벌러덩 눈밭에 누워버리는 거야 큰댓자로 누워 하늘 한번 쳐다보는 거지 무슨 잃어버린 물건을 찾듯 한참을 쳐다보다가, 마침내는 아무 생각 없이 쳐다보다가 아, 겨울볕이 첫사랑 같애, 첫사랑의 뺨 같애, 헛소리나 헛소리나 지껄이자는 거야
계간 《상상인》 2025년 겨울호, 포커스
얼띤 드립 한 잔
개뿔이라는 시어가 참 좋다. 열 개開나 다, 모두를 뜻하는 개皆도 좋고 이외 다른 뜻을 불러다 입혀도 괜찮다. 그 뿔이다. 뿔은 영어로 말하자면 혼(horn), 여기서 확장해 영혼까지 떠올릴 수 있는 그러니까 모든 영혼이여 부르듯 주술적 행위나 다름없다. 개뿔, 영하 12도, 영하는 제로 점 이하 지면 아래를 상징하며 십이도는 사학을 상징하듯 아주 사적이며 감정적이기까지 한 그러니까 공론할 수 없는 어떤 한 영역을 지칭한다. 얼핏 보면 그렇다. 오대산에나 가자는 거야 동피골 골짜기에 가자는 거지, 그렇다. 오대산과 동피골은 깊은 자아의 내면을 상징한다. 물론 실지 지명이지만, 여기서는 시로 쓴 글이니까 말이다. 오대산을 나 오吾와 클 대大 동피골을 골 동洞이나 움직일 동動 거기서 가죽이거나 피皮 나누거나 피披 내가 내 마음을 보살피는 쪽으로 말이다. 여기서 더 나가 시인은 마음의 상태를 더 자세하게 묘사한다. 외딴 폐가 지나서 굳게 닫은 듯 그 마음, 쩡쩡 터지는 고드름 소리와 같은 그 마음을 깨부수고자 하는, 그러니까 정갈하고 깔끔한 마음의 상태가 아닌 얼어붙은 멧돼지 발자국과 같은 그만큼 퉁퉁 불어있고 수정에 이를 것 없는 털 덥수룩한 그 마음 따라 따라서 얼음폭포 앞 눈사람 보러 가자는 거지, 눈사람은 눈을 뭉쳐 만든 게 아니라 어떤 배설물을 몸 밖으로 내보낸 그 사람을 지칭한다. 그러므로 눈도 삐뚤 입도 삐뚤하다. 마구 써놓은 글을 묘사한다. 삼배는 거듭 수행을 자처하며 소주는 역시 한 모금의 입김 기술 따위가 묻어나 있다. 요즘 사는 게 왜 이 모양이냐? 에구 나에게 자문하듯 가슴을 울리고 다시 찾는 모란동백이다. 모란동백, 모가 난, 모란이라는 소리 은유와 草綠同色과는 구별되지만 허한 공백은 아무것도 때 묻지 않은 동백(흰색을 상징)만 그립다. 그러고 나서 눈밭에 누워버리듯 무작정 써놓고 보면 어떤 방책도 나오는 법, 시는 모두 방계라 해도 과언은 아닐 터 근본은 안에 기거하니까 말이다. 겨울 볕처럼 쨍쨍하고 날카롭고 정갈하기까지 해서 어느 뉘 뺨 후려칠 수 있을 정도의 면-사발에다가 면-치기 하나 건질 수 있다면은야, 뭐 세상 모든 사 꿰뚫어 보듯 훤히 통할 텐데 말이다. 동백에 그리움도 소주가 불러오는 그 개뿔도 이 지긋지긋한 삶에 대한 권태는 어디다 손을 대며 꽃을 피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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