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을 엿보다 =강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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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을 엿보다
=강문숙
흙을 한 입 베어 물었던 기억이 가물가물한 삽과 곡괭이, 뒤뚱거리던 몸통으로부터 이탈된 지 오래 되었을 빛바랜 토종닭의 깃털이 평생 하늘 한 번 날아보지도 못하고 처박혀 있는 수돗가에, 홀로 씨방을 터뜨리며 해마다 물봉숭아는 피어 주인 없는 손톱을 물어뜯는다.
—게 누구요? 떠나면서도 꼭꼭 닫아 여민 부엌문, 방문들이 문고리를 달그락거리며 잠시 수런거린다. 반도 넘게 풀밭으로 변해 버린 뜨락에 게으르게 웅크리고 있던 적막이 부스스 일어난다. 청량산으로 가던 바람이 삭은 빨랫줄에 걸려 넘어져, 이리저리 뒹굴다가 황망히 사라진다.
귀퉁이가 떨어져나간 옹기 속에 일가를 이룬 약쑥들 다 부룩하다. 곧 이 빈집이 채워지겠구나 중얼거리며 뒤란을 돌아가는데, 어라! 여기 누가 콩 자루 터뜨렸나, 반들반들 까만 염소 똥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다. 저 앞 산등성이 쪽으로 빠끔히 열려 있는 문, 빈 염소막은 아직도 따스하다.
버려진 것들로 푸르디푸른 그 집.
강문숙 시집, 『따뜻한 종이컵』 (문학세계사, 2009)
흰 가운을 걸치고(鵲巢感想文)
솔직히 이 시를 읽고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시가 생각나면 한 번씩 찾아드는 마을 한쪽 어느 골목길 서성이다가 그냥 돌아가기에는 머쓱해서 돌멩이 하나 주워 호주머니에 넣고 온 기분이랄까! 늘 그랬다. 무엇하나 가지런하게 정리하는 법 없고 버리기에는 아까워 쌓아 둔 것들 이제는 버릴 때도 되었는데 한낱 게으름은 온갖 잡동사니로 만들어버린 처소격이다. 마치 내가 이승을 뜨지 못해 기웃거리다가 어느 폐가에 들러 잠시 기거한 것 같은 그 폐가야말로 다름 아닌 내 마음이라는 사실, 신문지 위 볼펜 똥으로 낙인찍은 흔적과 괜찮은 문장이라 곧 뜯어보겠다고 찢어 붙여놓은 옆 벽면을 보며 기민한 치타의 단거리는 저녁만 몬다. 삽과 곡괭이 토종닭의 깃털과 수돗가, 씨방과 물봉숭아에서 한량 피어오르는 연연한 새봄을 느끼면서 말이다. —게 누구요? 시의 돈호법, 어 아무것도 아니오. 거저 심심해서 한 번 들렀소. 그러면서도 여전히 떠나지 않는 총신은 서 있고 이제는 올 법도 한데 여전히 깜깜한 방, 스위치는 어딘지 몰라 손만 더듬다가 문득 말머리 돌려 어느 아이가 미처 잡지 못해 놓치고 만 곰 인형을 뚫어지게 본다. 나는 그 인형을 발로 차버릴 수도 있었으나 너무 아기자기해서 비누로 깨끗이 씻어 내 책상 위 올려놓고 보기로 한 사실, 가끔 뒤는 구리지만 한 번씩 미소 짓는 일도 있어. 그렇게 또 하루가 저물고 하루는 불 피운 침묵만 고스란히 남아 피난민인양 막사를 이룬다.
밤 잠 스치다 흰 가운을 걸치고 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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