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므로 =이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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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므로
=이혜미
너무 슬픈 꿈이라 여기까지만 꿀게요 엇갈린 잎사귀들이 많아서요 갈비뼈 사이에 여름 구름들이 자욱해서요 장마가 온대도 빌려줄 머리카락이 없네요 흐르므로, 시간은 그대로예요 우리만 떠나가죠 그런데도 나는 겹쳐진 순간의 침묵을 후회하는군요 마음을 헌 그릇처럼 내어주고 그냥 잠시 기대 있으면 어때요 구름이 꼭 비를 위해 모여든 것이 아니듯 손을 마주 대는 것이 언제나 기도는 아니듯 마주침이 꼭 잇대임으로 이어질 필요는 없잖아요 큰비가 오면 쓰러지기로 마음먹은 나무처럼 안개가 얼굴에 그려준 무늬처럼, 조금 더 흐느껴도 괜찮아요 모르므로
이혜미 시집, 『일곱번째 감각-ㅅ』 (여우난골, 2023)
흰 가운을 걸치고=鵲巢感想文
절대 따라 하지 마세요 바람이 풀잎을 몰고 다닌다고 그 위 태울 수 있을까요 아침은 순식간에 인파로 와 수염만 깎고 가요 그런다고 뜬 눈으로 파도가 그려질까요 안개는 너무나 빨라 불 수 없어 눈꺼풀은 금시 지고 맙니다 열에 아홉은 하품하며 묘지에다 꽃을 선사하지요 뿡뿡 기차는 달리고 물기에 젖은 피아노는 털갈이하다 가을만 봅니다 그러니까 이제라도 그만하세요 발목이 시리다고요 단풍 보며 어둠을 얘기해도 좋잖아요 여기가 저승이 아니란 듯이 꽃은 늘 피어 있을 테니까 바람은 큰비가 아니라도 어디든 어디가 됐든 빈터를 메울 거니까 문밖에서 문구멍을 뚫는 일은 저 천덕꾸러기에게 맡기고 오늘은 다만 소처럼 핥아요 당신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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