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살 =박미향
페이지 정보
작성자본문
몸살
=박미향
마른 감꼭지와 떨어진 감 사이의 간격엔
저물녘의 먹먹한 마음이 있다
가끔씩
노을은 마을을 송두리째 잡아먹고
붉은 이빨을 감나무에 걸쳐두고 사라졌다
나무와 노을의 간격에도
마르지 않는 젖은 시간이 있어서
이따금씩
그곳에 걸리면
몸이 길을 잃곤 했다
뼈만 남은 기억으로 집을 짓는 오후,
기왓장을 들썩이며 바람이 끼어들었다
무너지는 시간은 의외로 가볍고 아름다웠다
오후 늦게 편지가 왔다
빗소리가 온몸을 누르고 간 뒤
억새는 슬픔 때문에 머리를 하얗게 풀어 헤쳤다
계간 《시와 비평》 2026 봄호
박미향 경북 경산 출생. 2013년 박재삼문학상 신인상 등단. 시집 『붉은 주파수의 저녁』
흰 가운을 걸치고=鵲巢感想文
시를 읽으면 가끔은 어떤 한 공간을 메워주는 듯해서 기분이 좋다. 지면과 지상 그 어디에 방황하는 나를 단단히 묶어주니까, 그 어디는 감나무겠다. 시의 한 연씩 진행할 때마다 대조적인 문구를 찾을 수 있다면 마른 감꼭지와 감, 그리고 먹먹한 마음으로 연결한다. 저물녘은 죽음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시어다. 아무래도 마른 감꼭지에서 영혼이 없는 세계에 잠시 머물다가 떨어진 감에 그만 잃었던 영혼을 찾은 거 같은 느낌. 노을과 마을이 대조적이면 붉은 이빨은 변이며 감나무는 그 결과의 실체다. 다시 나무와 노을은 간격을 언급하고 뭔가 부족함을 느낀다. 다음, 뼈만 남은 기억과 집으로 여기에 바람이 끼어들고 무너지는 시간과 그것을 수습하는 과정을 편지로 대체한다. 편지에서 편은 곰곰 생각해 볼 만한 자로 채찍과 두루두루, 이 외 여러 가지 엮어 볼 수 있는 단어다. 시학에서 공감은 많은 것을 유추해 볼 수 있으니까! 빗소리는 시에서는 늘 부정적으로 쓰임은 말할 것도 없고 억새에서 식물계와 동물적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다. 집과 기왓장도 참 재밌는 표현이다. 집을 짓는 오후, 기왓장에서 그 무게감을 읽을 수 있으니까! 실지 기왓장 한 번 들어보기나 했을까, 그 무게감을 또 곰곰 생각해 보면 백지 한 장에 기왓장에다가 비유를 놓는다는 이 참신한 아이디어에 감탄할 따름이다. 예전이었다. 막일을 안 해본 사람은 없을 테니까, 기왓장 나르는 일은 만만치가 않다. 허리가 바닥에 닿는다 해도 그래서 손이 쉽게 떨어지나 싶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