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주의자 =김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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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주의자
=김수우
내 방 안에 하나의 방이 있다
참외 장수였던 영혼이 참외를 노랗게 쌓아 올린다
한칸 더 들어가면
우주로 나가는 녹슨 문고리가 보인다
엉겅퀴, 아픈, 아프게 붉은
내 사랑을 시적 장치로 삼지 않고
변명과 핑계를 암탉처럼 기르지 않고
합리를 사악한 현금처럼 뿌리지 말고
내 절망을 온실에서 키운 튤립으로 팔지 말고
그저 그대로 죽자
늙은 쥐가 오래된 도시에 알뜰하듯
노동, 고무대야 상춧잎같이 무심한
성실, 거친 우연에 찌글찌글 몸을 푸는
안개, 플라스틱을 삼킨 앨버트로스를 어떤 것에도 비유하지 말자
말자,
말자
방은 수직도 수평도 아닌 최초의 연민
병든 혁명과 싸우는 데 어떤 이론도 소용없고
찌든 냄비를 닦는 데 낯선 방정식은 필요 없고
소금기 많은 눈물을 기억하는 데 값싼 모방은 독초이니
삶은 어금니와 송곳니로 마시는 맹물이니
내 방 밖 또 하나의 방이 있다
그릇 장수였던 영혼이 유리그릇을 높다랗게 쌓고 있다
백년 내내 꿈속에서 길을 잃는 카프카처럼
한번도 죽은 적 없는 빗방울처럼
엉겅퀴, 뻔뻔한, 뻔뻔하게 붉은
계간 《시와 사상》 2023년 겨울호
흰 가운을 걸치고=鵲巢感想文
뿌리처럼 한 나무 위에서 속속 수유하는 산모는 꽤 피곤한 얼굴로
덴마크 드링킹에 견과류만 넣은 종지만 긁었으니까 한 끼 더
들어가면 다 찌그러진 냄비에 김치를 넣고 물과 뒤범벅 버전으로,
라면 사리로 때웠으니까 거기다가 소금 절인 민들레 나물로 속
다진 하루였다 누가 믿을 것인가! 방은 넓고 들어오는 이는 없고
종일 환풍기 도는 풍력에 역한 냄새만 있었으니까 거기는 코를 박고
올려다보는 제 얼굴의 그림자뿐 여기는 음산한 늦여름의 정경과
같은 밤이다 기러기 월북은 늘 봄에 이루어진다는데 봄은 말없이
족히 보냈건만, 저기 끓는 냄비에 달걀 하나 넣고 싶은 현금은
메말랐으므로 구질구질하고 답답해서 넌더리 날 때가 있음에도
저 번잡한 얼굴은 여전히 수평을 유지한 채 사악한 마군의 골격만
속속 빼간다 안단테로 걷다가 돗자리 깔고 아다지오의 박자에
끔뻑 졸기도 하면서 저기 저 떨어지는 물방울 이름하여 ‘나이트쿠스’
얘 준아 잠 좀 자자. 아따 야야 괴롭다 야 끊임이 없는 물소리에
놀란 개구리처럼 풀숲은 시들시들하다가도 두 다리 쭉 뻗은 주검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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