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일도 =이은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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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일도
=이은봉
금일도를 알고 있다. 금일도는 어깨가 넓고 가슴이 큰 여자다 아니다 얼레덜레 나무 절구통이다 나무 절구통처럼 어깨가 넓고 가슴이 큰 중년 여자다 아니다 금일도는 우리나라 남쪽 바다 어깨가 넓고 가슴이 큰 섬이다
넓고 큰 이 여자,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
아무 상관없다 특별한 사연 없다
언제인가 하룻밤 풋사랑은 그래도 있다
혼자서 오래오래 마음속에 품었던 여자
그 여자 금일도, 이제 더는 그립지 않다
금일도는 섬이다 어깨와 가슴이 넓고 큰 섬, 그녀는 철지난 금모래 밭이다 동백해수욕장이다 터덜터덜 거닐며 발자국이나 만들 수밖에 없다 밀물이 들면 죄 지워지고 말 패설 따위나 주절거릴 수밖에 없다
금일도 이 여자, 마음이 넓고 큰 여자
다리가 굵고 팔뚝도 굵다 나무 절구통이다
언젠가 하룻밤의 풋사랑 잊기 힘들다
절구공이 이미 다 문드러졌는데
나무 절구통 이 여자, 어디에 쓰나
금일도는 설움 많은 중년여자다 방풍림 길을 걷다가 그녀를 만나면 얼른 손잡고 철부선을 타야한다 불쑥 녹동항으로 나와야 한다 그녀와 더불어 숭어회에 소주 한 잔 해야 한다 그 다음에는, 그 다음에는 나도 잘 모른다.
이은봉 시집, 『뒤뚱거리는 마을』 (서정시학, 2023)
이은봉 1953년 충남 공주 출생 숭실대 문학박사 1983년 『삶의문학』 제5호에 「시와 상실의식 혹은 근대화」로 평론 등 1984년 창작과비평사의 17인 신작시집 《마침내 시인이여》를 통하여 등단 시집으로 『좋은 세상』 『봄 여름 가을 겨울』 『내 몸에는 달이 살고 있다』 『무엇이 너를 키우니』 『길은 당나귀를 타고』 『걸레옷을 입은 구름』 『봄바람, 은여우』 『생활』 『걸어 다니는 별』 『뒤뚱거리는 마을』 평론집으로 『시와 깨달음의 형식』, 『시의 깊이, 정신의 깊이』 시선집으로 『초식동물의 피』 『초록잎새들』 시론집으로 『화두 또는 호기심』 『풍경과 존재의 변증법』 등
흰 가운을 걸치고=鵲巢感想文
금일도를 의인화하여 그린 수작이다. 어깨가 넓고 가슴이 큰 여자처럼 나를 받아 준 금일도는 나무 절구통처럼 풍경만 그린 곳도 아니다. 이 섬은 나의 풋사랑처럼 곳곳 지도 없이 갈 길을 알려주고 설움 많은 세월을 잊게 한다. 정말이지 금일도는 죄 많은 하루살이 애인을 밀물처럼 깨끗이 씻어주기도 하고 아장아장 털어놓는 패설까지도 고운 눈으로 덮어준다. 중년의 바람 갈 곳 어디 있으랴! 금일도에 가 맑은 소주 한 잔에다가 숭어회 한 사라면 혹여 하늘 뜬구름조차도 말끔히 지워지겠다. 아 순간 금일도에 가, 거기 금모래 밭이며 동백해수욕장처럼 터덜터덜 거니는 발자국에다가 굵고 실한 절굿공이나 다 문질러 光 한 번 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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