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속의 집 =이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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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속의 집
=이상국
그해 겨울 영랑호 속으로
빚에 쫓겨온 서른세살의 남자가
그의 아내와 두 아이의 손을 잡고 들어가던 날
미시령을 넘어 온 장엄한 눈보라가
네 켤레의 신발을 이내 묻어주었다
고니나 청둥오리들은
겨우내 하늘 어디선가 결 고운 물무늬를 물고 와서는
뒤뚱거리며 내렸으며
때로 조용한 별빛을 흔들며
부채를 청산한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인근 마을까지 들리고는 했다
얼음꽃을 물고
수천마리 새들이 길 떠나는 밤으로
젊은 내외는 먼 화진포까지 따라 나갔고
마당가 외등 아래서
물고기와 장난치던 아이들은
오래도록 손을 흔들었다
그러나 그 애들이 얼마나 추웠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나의 뺨을 적신다
그래도 저녁마다
설악이 물 속의 집 뜨락에
아름다운 놀빛을 두고 가거나
산그림자 속 화암사 중들이
일부러 기웃거리다 늦게 돌아가는 날이면
영랑호는 문을 닫지 않는 날이 많았다
그런 날은 물 속의 집이 너무 환하게 들여다보였다
이상국 1946년 강원도 양양 출생 1976년《심상》등단 <갈뫼>, <신감각> <속초시> 동인 민족예술인상, 제1회 백석문학상, 유심작품상 수상 시집으로 『동해별곡(東海別曲)』,『 내일로 가는 소』,『우리는 읍으로 간다 』,『집은 아직 따뜻하다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등.
흰 가운을 걸치고=鵲巢感想文
이 시의 전반적인 내용은 자살한 어느 젊은 부부와 그 아이까지의 얘기를 시로 승화한 작품이다. 마음은 숙연하게 와닿지만, 또 한 편은 왠지 모르게 웃음과 해학이 묻어난 작품이다. 영랑이라는 말은 윗사람의 아들을 높여 이르는 말로 영랑호는 물의 세계를 상징한다. 이에 반해 서른세 살, 삼십삼의 숫자는 기세 짱짱하고 한창 잘 나가는 세대를 반영하지만 삼십삼은 열 십의 세 번과 간여와 낀 삶을 대변한 삼參과 무관하지가 않다. 빚은 역시 마음에 대한 대가다. 미시령과 눈보라, 시가 아닌 어떤 한 지점을 통과한 아이와 면접을 하고 네 켤레의 신발 즉 기승전결起承轉結과 같은 믿음을 심어본다. 실지 영랑호에서 이와 같은 사건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와 같은 사건은 흔하게 접한 일이기도 해서 글로 마음의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우리는 묻고 있다. 시를 움직이게끔 한 동물적 심성을 고니나 청둥오리에 비유를 놓았다면 조용한 별빛과 이를 몰고 온 마음의 부채와 이와 더불어 청산한 가족의 웃음소리는 마음의 이해와 득실 거기서 피어난 협조와 찬의贊意 이겠다. 얼음꽃과 물고기는 대조적이며 수천 마리의 새가 이상에 가까운 거라면 장난치던 아이는 역시 조금 모자란 손임에는 분명하다. 마당가 외등에서 지면을 떠올릴 수 있다면 화진포는 그 지역명을 떠나 불처럼 나아가 내뿜을 수 있는 개 포浦며 쌀 포包며 내던질 포抛다. 그러나 그 애들은 얼마나 추울까! 시의 고체성과 이별 그리고 그 결단에 머금은 신의 한 수였다. 지금도 눈물이 나의 뼘을 적신다. 여기에 반성과 회한이 묻어나 있다면 옥에 머금은 시의 결정체라 할 수 있겠다. 저녁이 죽음을 상징했다면 설악은 죽음의 한 자락으로 혀 설舌에 쥘 악握으로 하나의 산 그림자임에는 분명하다. 놀 빛과 화암사 중의 겹쳐 깨달음의 세계를 반영한다면 그야말로 영랑호는 물속의 집이 아니라 할 수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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