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나는 당신들과는 공부하는 법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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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나는 당신들과는 공부하는 법이 달랐다
법명法名/ 덕산德山
법호法號/ 탄무誕无
처음에는 당신보다 한참이나 더디고 느렸다
단 일 퍼센트의 가능성도 없어 보였다
그런데 왜? 내가 부처와 계합하는데 빨랐는가 하면
당신은 알려고 책을 자꾸 들여다보았고,
온 데를 찾아다니며 다 뒤졌다
아는 게 많아지면
아는 만큼 번뇌망상이 줄어들어야 하는데
이 생각, 저 생각, 딴생각은 줄어들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알기 싫어했다, 알고자 함을 포기했다
모든 것을 경계와 장애로 알고 화두話頭에만 미쳐버렸다
화두 하나에 모든 것을 걸었다, 의지했다
답답하고 모르면 모를수록 화두에 더 미쳐버렸다
미쳐야 미칠 수 있다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칠 것 같은,
돌아버릴 것 같은 화두 작업(간화선)을 통해
일체 번뇌망상이 다 쓸려나간 삼매三昧에서
텅 빈 공空에 떨어져 부처의 본체本體,
허虛를 바로 찔렀다
선택받은 자가 되었다
언어만을 취득해
지식적으로 더 많이 알려고 하는
당신의 부질없는 그 습(習,濕)으로 말미암아
당신은 아직도 여전히 그 자리지만
나는 시절인연時節因緣을 만끽한다
실로 이 차이는 엄청나다
부처의 눈이 장착된 본지풍광本地風光은
시도 때도 없이
오도송悟道頌(선시禪詩)으로 줄줄 흘러나온다
뼛속까지 가난이 모두 점령한
구멍 없는 철추鐵鎚가
정신없이 설쳐대는 마음의 면상을 후려쳤다
백골 즐비한 곳에
달이 우물 보듯
우물이 달을 엿보듯
정답게 보이는 사람.
모든 경계 속에 무변無邊(중도)으로 있고
더할 나위 없이 투명하여
티끌만 한 작은 겨자씨 속에도
침묵과 고요만을 먹으며
영적으로 광활하게 살아있다
손이 다 닿을 수 없는 무한한 세계
*
*
* 부처/ 인간의 본래 성품.
* 가난/ 부처, 인간의 본래 성품.
* 구멍 없는/ 빠져나갈 틈이 없음, 빈틈이 없음.
* 구멍 없는 철추鐵鎚/ 부처의 본체 공空, 허虛, 무無.
* 백골 즐비한 곳/ 다 죽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
즉, 부처의 본체 공, 무, 허를 가리킴.
백골 즐비함은 다른 말 같은 뜻으로
무덤으로 표현할 때도 많음.
조사선祖師禪(선문답)에서는 관(關, 棺)으로 통합니다.
.
댓글목록
안희선님의 댓글
시가 매끄럽지 않아도, 좋습니다
수평적 넓이와 함께 수직적 깊이가 있으니..
지식이 많다고 해서, 결코 현명한 건 아니지요
시에서도 흔히, 그런 걸 보게 되는데
소위 한 知識한다는 시인들의 시치고
시다운 시는 별로 없더란 거 - 그 좋은 例가 이것 저것, 잡탕 지식으로 충만한 저의 경우
탄무 시인님이야, 진즉에 아시는 일이겠지만
지식이란 결국 따지는 분별심 分別心 (이것은 맞다, 저것은 틀리다..옳고 그르다)이어서
그것들이 머리 속에 첩첩이 쌓여갈수록 현명한 삶과는
거리가 십만팔천리 멀어지는 거 같습니다
그 좋은 예가 현하 現下의 학교교육인데요
요즘은 <사람이 사람답게>라는 인성교육은 사라지고
오로지 좀 더 나은 진학과 취업, 그리고 출세를 위한
지식의 전수가 그 전부가 된지 오래입니다
그러니, 그 같은 교육을 ..아니, 그게 교육인지 견공훈련인지는 몰겠지만
암튼 그런 악다구니 같은 환경에서 자라난 청소년들이
현명한 사람이 되기엔 요원한 일 같습니다
그건 종교판도 마찬가지여서, 종교가 지닌 원래의 참모습과는
달리 성경 머리 속에 주입하고 그 귀절 잘난척 해석하기, 불경 달달 외기 등
강 건너면 마땅히 버려야 할 배에 강 건널 생각은 안하고
오로지 그 배에 모든 걸 걸고 있는 거 같더군요
그리고 그 배가 유지. 보수를 통해 튼실해야 하니.. 각종 헌금과 시주등을
신도들에게 강조하는 것도 같습니다 - 이거는 또, 배보다 뱃사공 (화려한 건물에 居하는성직자)이
우선적으로 잘 먹고 잘 살아야 한다는 괴이한 논리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많이 안다고 자랑질 하는 거에선
그 어떤 지혜도 나올 수 없음을..
아, 물론 시도 그러하지만요
깊은 말씀에 머물다 갑니다
늘 건강하시고 건필하소서
탄무 李 시인님,
탄무誕无님의 댓글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또 반갑습니다.
늦게까지 공부하시는 거 같던데,
일찍 기침하셨습니다.
병이 깊은 분은 충분히 주무셔야
건강이 빠르게 진행되는 것을 막아 더 악화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잘 안 되지요.
저도 사실은 잠이 충분하지 않을 때 많습니다.
한꺼번에 몰아서 잘 때 많습니다.
매끄럽지 않아도, 바르게 읽어주신다면
모든 사람이 시인님처럼 밝은 눈을 갖추었다면
제가 얼마나 좋겠습니까?
덩실덩실 한바탕 춤을 추겠습니다.
아래 댓글 너무나 옳고, 옳은 말씀입니다.
/지식이 많다고 해서, 결코 현명한 건 아니지요./
그렇습니다.
유명한 사람이 현명한 사람이 아닌데,
사람들은 유명한 사람이 곧 현명한 사람인 줄 알고 있지요.
유명한 것은 중생의 세계, 중생들에게 중생으로 유명한 것이지,
부처(깨침)의 세계에서 유명한 사람이(선각先覺, 선사禪師가) 아닌데도 말입니다.
부처의 세계에서는 어림도 없는 사람입니다.
열심히 하는 데까지
부처(인간의 본래 성품)의 살림살이
공으로 계속 내어드리겠습니다.
시인님의 좋은 말씀 저도 잘 들었습니다.
장문의 댓글 주셔서 많이 감사합니다.
.
탄무誕无님의 댓글
*
석일(昔日)에 호남(湖南)의 기림(祇林)선사께서 항상 목검(木劒) 한 자루를 들고 말씀하시기를,
“나는 마군을 항복시킨다.”
“날마다 문수(文殊)와 보현(普賢)이 마구니가 되어서 온다.”
하시면서,
어느 스님(학인學人)이든 와서 절을 하기만 하면,
“마구니가 왔도다!” 하고,
목검으로 몇 번을 휘두르시고는 방장실(方丈室)로 돌아가셨다.
이렇게 12년간을 법문하고 제접(提接)하시다가 어느 날 칼을 치워버리셨다.
그런 후에 어떤 스님이 묻되,
“12년 전에는 어째서 마구니를 항복시켰습니까?” 하니
기림선사께서 답하시기를,
賊不打貧兒家<적불타빈아가>니라.
도적은 가난한 집을 훔치지 아니한다.
하셨다.
스님(학인)이 다시 묻기를,
“그러면 12년 후에는 어째서 마구니를 항복시키지 않으셨습니까?”
하니,
기림선사께서
賊不打貧兒家<적불타빈아가>니라.
도적은 가난한 집을 훔치지 아니한다.
라고 답을 하셨다.
시회대중(時會大衆)은 묻는 저 스님(학인)을 알겠는가?
양구(良久, 한참 이러저리 살피다)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점검하여 진제 대선사(현 제13대 조계종 대종정)께서 이르시기를,
小兒撼鐵柱<소아감철주>로다.
소아(小兒)가 쇠기둥을 흔듦이로다.
기림선사를 알겠느냐?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진제 대선사께서 스스로 점검하여 또 이르시기를,
信手拈來一一親<신수염래일일친>이요
祇林劍下盡凡聖<기림검하진범성>이니
賊賊 <적적>이로다.
능숙하게 잡아 옴에 일일이 친함이요,
기림(祇林)의 검 아래 범부와 성인이 흔적없으니
도적, 도적이로다.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진제 대선사께서 하좌(下座)하시었다.
정축년 하안거 동화사 금당선원에서 진제 대선사의 해제 법어(2541.1997)
.
탄무誕无님의 댓글
*
오늘 중으로 이것을 낱낱이 평역해서 댓글란에 붙여놓겠습니다.
언어적인 아래의 뜻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뜻이 익숙해지도록 각인시키십시오.
* 一一일일/ 하나하나, 모조리, 낱낱이, 전부.
* 信手신수/ 일이 손에 익어서 손을 놀리는 대로 제대로 됨.
/ 즉, 모든 행위(일)가 몸과 하나가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
.
나 탄무誕无는 말한다.
친親이란 글자는 어머니가 나무(木) 위에 올라가 가지를 밟고 서서(立)
장에 간 아들이 오는가를 간절히 기다리는 모습을,
장에 간 아들이 돌아오는 길을 멀리서 보고 있는(見) 형상을 본뜬 글자다.
친親은 아들을 간절히 기다리는 어머니의 심정이다.
사무치게(親切) 만나는(보는) 자리에서 진짜 만남은 기약될 수 있다.
이 말을 회전回轉시키면 이렇다.
지독하게 사무쳐야 부처와 만날 수 있다.
과거로부터 의미가 영 달라진 것은 親切이다.
지금은 “친절하다”로
영어의 kind(친절할 때 친)나 friendly(친구할 때 친)의 뜻을 갖고 있지만,
선가(禪家, 깨침, 부처)의 언어에서는 다르다.
친親이란 “몸에 스며든”/ “실지경험實地經驗에 입각한”의 뜻이다.
'몸소'를 뜻한다.
몸소 체험했다는 뜻이 친親에 살아있다.
베여있다.
절切은 말 그대로 “절박한, 간절한”의 뜻이다.
친親과 절切이라는 두 글자가 서로 합쳐지면 /절실하다/, /간절하다/는 뜻을 갖는다.
진제 대선사께서 게송偈頌에서 일일친一一親이라 하셨다.
여기서 사용된 언어, 친親은 부처의 언어다.
/부처를 체득한 사람/이란 뜻이다. 주어는 생략되어 있다.
친親은 부처를 몸소 체험한 사람을 가리킨다.
진제 대선사의 게송偈頌(게송이 곧 오도송)에서
친親이 가리키고 있는 분은, 몸소 체험하고 계합한 분이다.
그분은 기림선사다.
그럼 위로 올라가서
진제 대선사의 해제 법어를(부처의 말씀, 인간의 본래 성품에 대한 말씀)
처음부터 자세히 평역해드리겠습니다.
.
탄무誕无님의 댓글
*
나 탄무誕无는 말한다.
이러이러할 것이다.
부처에 대해 /마음의 농간~ ~ 겠지 수/를 두지 않았으면 한다.
부처는(인간의 본래 성품은) 체험의 영역이다.
깨치기 전에는 마음은 부처가 될 수 없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있다.
계합契合해야만 즉심시불卽心是佛이 된다. (계합해야만 마음이 곧 부처가 된다)
선사禪師들은 목검木劒을 들고 있을 때도 있고,
주장자를 들고 있을 때도 있고, 지팡이를 들고 있을 때도 있고,
벌레 쫓는 불자拂子를 들고 있을 때도 있다.
아무것도 안 들고 법을 설說하는 선사도 있다.
/ 나는 마군을 항복시킨다./
* 마군이란 마음 행위를 말한다.
/ 날마다 문수(文殊)와 보현(普賢)이 마구니가 되어서 온다./
우리 인간의 본래 성품은 문수보살이고, 보현보살이다.
그런데 번뇌 망상에 사로잡힌 마음 행위 때문에
문수와 보현이 마구니가 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 행위는 말 그대로 도둑놈이다.
도적盜賊이다.
마구니다.
문수보살이니, 보현보살이니 하는 것은 전부 부처의 다른 이름이다.
이런 말에 속지 않았으면 한다.
다른 말 같은 뜻에 속아서는 안 된다.
당신 하나를 두고 집에서는 누구누구 아빠, 누구의 남편,
누구누구 엄마, 누구의 부인, 고모, 이모, 삼촌,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는 밖에서는 사장님, 또는 직책이 있으면 그 직책에 상응하는 이름,
본가에서는 누구누구 아들, 누구누구 형, 동생 등으로 불린다.
당신은 하나인데 당신을 부르는 이름은 수도 없이 많다.
인간의 본래 성품 하나에 수없는 이름이 붙어 있다.
/ 12년 전에는 어째서 마구니를 항복시켰습니까?” 하니/
/ 기림선사께서 답하시기를,
/ 賊不打貧兒家<적불타빈아가>니라.
/ 도적은 가난한 집을 훔치지 아니한다.
/ 하셨다.
* 여기서 적賊은 인간의 모든 마음 행위를 가리킨다.
* 인간의 마음 행위가 도적盜賊이다. 도둑놈이다. 마구니다.
* 자신의 마음 행위를 가만히 지켜보면 도둑놈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 빈아가貧兒家라고 했다.
나, 탄무誕无는 /부처와 동거를 시작한 지 오래되었다/는 오도송悟道頌에서
/ 숫놈이 아이를 낳은 세계 /라고 노래를 불렀다.
거기서 주해註解를 달아드렸다.
아이兒/ 어린아이는 순진무구純眞無垢한 성품을 가졌다.
즉, 부처의 성품, 부처를 가리킨다고 친절親切이 설명해드렸다.
빈貧/ 가난이다. 물질적인 가난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마음 행위와 번뇌망상이 하나도 없는,
일체 번뇌망상이 다 죽고 아무것도 없는 가난함이다.
부처의 성품을 가리킨다. 인간의 본래 성품을 가리킨다.
이 가난은 부처의 본체本體, 공空이다, 무無다, 허虛다.
부처의 먹이 침묵과 고요다.
賊不打貧兒家<적불타빈아가>란 말은
마음 행위는(도적은)
부처를(아이처럼 순진무구한 아무것도 없는 집을) 훔치지 못한다/는 뜻이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집(공, 무, 허)에는 훔쳐갈 것이 없다.
그래서 훔치지 못하는 것이다.
공으로 된 집을 무슨 수로 훔칠 수 있겠는가!
부처와 계합되어 있음을 당당히 밝힌 구절이다, 게송偈頌이다.
오타수정과 내용 불충분한 것을 바로 잡으며 계속 이어서 평해드리겠습니다.
.
탄무誕无님의 댓글
/ 다시 묻기를,
/ 그러면 12년 후에는 어째서 마구니를 항복시키지 않으셨습니까?”
/ 하니,
/ 기림선사께서
/ 賊不打貧兒家<적불타빈아가>니라.
/ 도적은 가난한 집을 훔치지 아니한다.
/ 라고 답을 하셨다.
* 뜻은 앞에 설명한 것과 같다.
* 그런데 앞에 질문과 뒤에 질문이 다른데 기림선사는 다시 같은 법어(게송)를 사용해서 답했다.
* 이것은 / 부처와 한 번 계합하게 되면 다시는 미혹하지 않게 된다/는 뜻이 숨어 있다.
* 부처의 작용으로 말미암아 다시는 미혹에 떨어지지 않게 되는 묘지력妙智力이다.
* 부처의 작용으로 인해 인과因果 법칙에 어둡지 않게 된다.
* 한 번 바르게 깨치면 부처에 대해 다시는 의심할 수 없게 된다.
* 실제 그렇다.
* 도둑(마음 행위)은 영원히 가난한(부처의) 집을 훔치지 못한다. .
/ 진제 대선사께서
/ 시회대중(時會大衆)은 묻는 저 스님(학인)을 알겠는가?
* 앞에 물음과 뒤에 물음, 이 두 물음만 가지고는
* 진제 대선사께서 가리키는 저 스님이 깨친승인지는 바르게 알 수 없다.
* 오도송, 선문답, 조사선만 있어도 깨친승인지 바로 알 수 있다.
* 저 스님이 기림선사께 물은 질문만으로는 부족하다.
* 분명한 것은 저 스님(학인)은 일반승이 아니다.
* 선문답禪問答에 능숙한 선객禪客(불보살)이다.
* 問在答處요, 答在問處<문재답처요, 답재문처>로다.
* 묻는 것은 답하는 데 있고, 답은 묻는 데 있음이로다.
* 묻는 것은 답하는 데 있고, 답은 묻는 데 있음을 알고 있는 수행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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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무誕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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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스로 점검하여 진제 대선사(현 제13대 조계종 대종정)께서 이르시기를,
/ 小兒撼鐵柱<소아감철주>로다.
/ 소아(小兒)가 쇠기둥을 흔듦이로다.
/ 기림선사를 알겠느냐?
* 소아小兒/ 어린아이다.
* 나 탄무誕无는 말했다.
* 어린아이는 순진무구純眞無垢한 성품을 가졌다.
* 즉, 부처의 성품, 부처를 가리킨다고 친절親切이 설명해드렸다.
* 철주鐵柱/ 위 본문에 실린 오도송悟道頌에서
* 구멍 없는 철추鐵鎚가, 할 때의 철주와 철추는 같은 뜻이다.
* 철주鐵柱와 철추鐵鎚는 부처의 본체 공을 가리킨다.
* 진제 대선사의 철주鐵柱처럼, 탄무의 철추鐵鎚처럼 써도 그 뜻은 변하지 않는다.
* 왜 철주라고 했는가 하면 /공은 쳐봐도 쓰러지지 않고 때려봐도 넘어지지 않는다./
* 영원히 무너지지 않음으로 단단한 쇠에 비유하여 진제 대선사께서는 철주鐵柱라 했다.
* 이 철주鐵柱(공空)를 경經에서는 금강金剛이라 한다.
* 그래서 금강경金剛經이 탄생했다.
* 뜻은 이렇다.
* 부처(기림선사)가 부처의 본체, 공을 잡고 흔듦이로다.
* 부처(기림선사)가 부처의 본체, 공에 대한 법문을 펼친 것이다.
* 기림선사를 알겠느냐?
* 예, 알고 있습니다.
* 부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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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무誕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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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제 대선사께서 스스로 점검하여 또 이르시기를,
/ 信手拈來一一親<신수염래일일친>이요
/ 祇林劍下盡凡聖<기림검하진범성>이니
/ 賊賊 <적적>이로다.
/ 능숙하게 잡아 옴에 일일이 친함이요.
/ 기림祇林의 검 아래 범부와 성인이 흔적없으니
/ 도적, 도적이로다.
* 信手拈來一一親<신수염래일일친>이요.
* 나 탄무는 말했다.
* 一一일일/ 하나하나, 모조리, 낱낱이, 전부.
* 信手신수/ 일이 손에 익어서 손을 놀리는 대로 제대로 되다.
/ 즉, 모든 행위(일)가 몸과(부처와) 하나가 되어 있다.
* 일일친一一親이라 하셨다. 친親은 부처의 언어다.
* 친親이란 “몸에 스며든”/ “실지경험實地經驗에 입각한”의 뜻이다.
* '몸소'를 뜻한다.
* 친親은 /부처를 체득한 사람/이란 뜻이다.
* 주어는 생략되어 있다.
* 친親이 가리키고 있는 분은, 부처를 몸소 체험하고 계합한 분이다.
* 그분은 기림선사다.
* 뜻은 이렇다.
* 기림선사가 하는 모든 행위는 부처가 하는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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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祇林劍下盡凡聖<기림검하진범성>이니
* 기림선사 검 아래 범부와 성인은 흔적 없으니,
* 검은 법안法眼이다, 부처의 눈이다.
* 기림선사 법안法眼에는 범부와 성인이 있을 수 없다.
* 깨쳤을 때 범부와 성인이 있을 수 없게 된다.
* 부처의 세계에는 범부와 성인이 없다.
* 텅 빈 공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는 공이다.
* 賊賊<적적>이로다.
* 도적, 도적이로다.
* 앞에 설명해 드렸던 마음 행위라는 '도적'과 진제 대선사께서 말씀하신 '도적'은 다른 뜻이다.
* 대상이 다르다.
* 차원이 다르다.
* 적적賊賊은 도불盜佛을 가리킨다.
* 부처를 훔친 진짜 도둑을 뜻한다.
* 주어는 생략되었다.
* 생략된 주어는 기림선사다.
* 기림선사는 진짜 도둑이다. 부처를 훔친 도둑이다.
* 부처와 계합한 선사禪師를 선가禪家(깨침의 세계)에서는
* 법을 거칠게 쓸 때는 도둑놈이라고 표현한다.
깨친 선사를 가리켜 부처를 훔친 자라는 뜻으로 사용된 도둑은 임제록臨濟錄에서도 등장한다.
예사롭지 않고, 활달하고 거침이 없는 선각先覺 보화가 등장한다.
법을 아주 거칠게 사용하는 선각先覺 보화에게
임제선사가 “야 이 도둑놈아!” 하자,
보화가 임제선사를 향해 “도둑놈아! 도둑놈아!” 하면서 되받아치고 나가버렸다.
이때도 도둑은 부처의 법안法眼을 훔친 도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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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무誕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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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에 대해 아는 것은
부처를 체득함만 못하고,
부처를 체득한 것은
부처에 계합함만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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