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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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꽃
그 애는 까만 알들이 콕콕 박힌 귀걸이를 끼고 있었다.
꼭, 머리칼을 엮어 만든 것만 같아-
생각할 때에
홱,
나의 눈길에 그 애는 어림도 없다는 듯 고개를 쌩하고 돌렸다.
그 모습에 나의 붉은 입술이 나도 모르게
삐죽,
나왔다.
새침한 기집애.
마을 어른들이 수군거리던 서울에서 내려 온 부잣집 딸내미.
누가 그런 걸 부러워할쏘냐? 당치두 않지.
학교에 귀걸이나 하고 오는 날라리 주제에.
그 애를 보았니?
그 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 물어보는 아버지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둥 마는 둥 하였다.
대체 얼굴은 왜 빨개져?
아버지와 어머니는 껄껄 웃었다.
그 날 이후로
눈을 감으면 자꾸만 까만 알들이 박힌 귀걸이가 내 눈을 어지럽혔다.
아니, 춤을 추었던 것일까.
그만 보고 싶은데,
그만 보고 싶은데,
정말 그만 보고 싶은데,
눈을 감기만 하면
소녀의 통통한 귀와, 까만 귀걸이, 또 까만 머리카락, 하얀 턱, 홱 돌리던 새침한 형상까지
모든 것이 자꾸만 내 눈 앞에서 춤을 추었다.
쿵쿵쿵.
쿵쿵쿵.
까닭 없이 마음이 쿵쿵거려 나는 잠에서 벌떡 깨어났다.
아니, 이건 내 마음이 쿵쿵거리는 소리가 아니었나?
쿵쿵쿵.
누군가 우리 집 대문을 쿵쿵쿵,
두드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아버지 어머니가 나가는 소리가 들리고,
누나의 방문도 열렸다.
누군가 울고 있었다.
우물우물, 누군가 울음을 가득 섞어 말을 하고 있었다.
아!
그 애야!
나는 헐레벌떡 뛰어나갔다.
도와주세요.
동생이 너무 아파요.
그런데 부모님은 어제 서울엘 가셔서 집에 아무도 없어요.
그 애의 맞잡은 두 손 위로 얼굴을 타고 내리던 눈물이 하나씩, 둘씩,
떨어져 내렸다.
도와주세요.
남몰래 너무 많이 걸어 눈 감고도 걸을 수 있는 그 길로
나는 냅다 내달렸다.
쿵.
쿵.
쿵.
이번엔 누가 우리 집 대문을 두드리는 게 아닌데
또 무언가 쿵쿵거렸다.
쿵.
쿵.
쿵.
꽃 같은 그 애가 흰 꽃을 양팔로 가득 안고 나에게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 애가 가까워질수록
쿵.
쿵.
쿵.
소리가 커졌다.
꽃 같은 그 애가 꽃을 가득 안고
나의 책상 앞에 우뚝 멈춰 섰다.
별안간 눈이 부셨다.
꽃 때문에.
그 애 때문에.
안개꽃이야. 이 꽃 아니?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저어기, 그 때 일, 고마워서...물론 부모님이 감사표시를 하셨지만 그래도...나도 따로 하고 싶었어.
나는 그 애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이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꽃이야. 어제 시내에 나가서 엄마와 사왔단다. 네가 꽃을 좋아할 지는 모르겠어...좋아하지 않으면 너의 어머니께 드려도 되고...
아니, 난 필요 없으니 도로 가져 가.
뭐?
나는 필요 없다고. 내가 기집애니? 꽃 같은 건 아무 흥미 없어.
그래도 내 마음의 표시야. 가져가기라도...
아이, 썅. 귀찮게 정말!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 애를
홱,
스쳐 지나갔다.
화장실 문을 박차고
쓰레기통을 걷어 찼다.
입에서 욕이 나왔다.
병신새끼.
그 이후로 그 애는 아무 말이 없었다.
미.
안.
수 천 번을 거울 앞에서,
교실 문 앞에서,
교실 책상에 앉아,
그 애의 뒤통수를 쳐다보며 그 애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 애는 듣지 못한 듯 하였다.
여전히 나에게 아무 말이 없었으므로.
서울로 떠나기 전날 밤,
친구들과 송별회를 거나하게 마치고 정류장으로 가던 길에
그 꽃을 보았다.
따뜻한 불빛을 가득 뿜어 내던 시내 꽃집,
그 안에 흰 꽃이 한 가득 놓여있었다.
부웅-
버스는 떠났고
나는 어느 새 그 애의 집 앞이었다.
꽃을 드느라 주머니에 넣지 못한 손이 시렸다.
겨울 찬바람에 날아갈까,
바스락거리는 포장지가 흐트러질까,
대문에 눌리지는 않을까,
나는 조심조심,
흰 꽃 한 다발을 그 애의 집 대문 밑에 끼워 넣었다.
미.
안.
나는 가만가만 입술을 움직여 닫힌 그 애 집의 대문 앞에서 작게 속삭였다.
마지막 인사였다.
그 애 집 앞을 서성이던 마지막 발걸음이 돌아섰고,
검은 알이 박힌 귀걸이도,
통통한 귀도,
흰 턱도,
모두
마지막이었다.
단 하나,
흰 꽃만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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