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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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
널직한 담요를 목에 망토처럼 두르면
겁 없던 시절이 있었다
마루 한 켠에 요를 깔고
불알 친구와 치마폭처럼 뒤집어 쓰면
방이 하나 생기던
그런 때가 있었다
지금 내 장롱엔
묵은지처럼 절어진 이불, 언제부터
시퍼렇게 살아 있는
야음을 덮고 잠들었다
이 바닥은 망자의 뱃가죽처럼 차고 나는
아버지, 당신의 배 위에서
갓난 망아지처럼 자꾸만 널부러져
잠이 들던 때를 기억합니다
솜이불처럼 덮어주시던
두꺼운 날숨,
저녁 빛이 나를 깨우도록
불 켜주는 이 없는 나의 방은
아무도 잡아주지 않는,
슬픈 무중력
밤하늘에 누런 별 하나
길을 잃은 듯 먹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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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쇄사님의 댓글
시마을에서
꼭 한번 만났으면 싶은
형식2 님.
빤한 것을 빤하지 않게 끌고 가는 솜씨가
장석남이나 문태준의 계보를 이을 것도 같습니다. 암튼
여전히 좋은 시 쓰시네요.
여전히 ...처럼도 많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