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몸은 신神이 사는 거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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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사람 몸이 정
법명/ 덕산
법호/ 탄무
내가 누구인지 확실히 대답해 줄 수 있는
내 안에 존재하는 커다란 내 사람
우주를 거느린 얼굴 없는 부처,
체(體)는 하나지만 상(相)은 여럿
어지럽거나 분잡지 않다
원효가 말했던가?
"무한정 펼쳐도 그 근본은 다치지 않는다."라고
무한정(상)이란 부처에 대한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이름(법문, 대기묘용)을 말하는 것
체는 공이거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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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 육신의 죽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 분별심(알음알이, 마음 행위)을 다 죽여야
/ 영원불멸의 부처를 만날 수 있습니다.
* 부처/ 인간의 본래 성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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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탄무誕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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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탄무誕无는 말한다.
부처 공부에서 가장 결정적 고비는 공(空)의 체험이다.
색(色)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며,
온갖 모양이 모양 아님을 체험하는 것이 바로 부처의 핵심이며,
부처 체험의 본질이기도 하다.
부처의 본체인 부처표 공은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체험을 통하여 확인(발견)되는 실재이다.
공의 체험은 아상(我相)과 법상(法相)을 비롯한
온갖 경계로부터의 자유이며 자재한 해탈이다.
공은 어떻게 체험되는가?
본래 마음은 공이다.
다만 의식(意識)의 모양에 가로막혀
본래 공인 마음을 알지 못하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의식의 모양에 유혹되고 속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공인 그대로의 마음이다.
의식의 모양에 유혹되고 속으면 무언가를 의도(意圖)하여 하려고 한다.
즉 헤아리고 분별하여 어떻게 하려는 것은 모두 의식에 유혹되어 속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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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무誕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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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또한 그대로 공임을 알려면 의식을 따라가지 말아야 한다.
의식을 따라가지 않으려면 의도적으로 생각을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즉 헤아리고 분별함에 따라가지 말아야 한다.
본래면목이라고 하여 무엇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본래면목이 바로 공이다.
공은 그 무엇이 아니므로 어찌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어찌하려고 할 때 바로 공을 놓쳐 버린다.
그러면 그대로 놓아두어야 하는가?
그대로 놓아둔다고 한다면 이것도 어찌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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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무誕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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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안희선 시인님께서 올린 글을 초록해 놓고
/ 모든 것이 거꾸로 가고 있다.
/ 의사는 건강을 해치고,
/ 변호사는 정의를 해치고,
/ 대학은 지식을 파괴하고,
/ 주류 언론은 정보를 왜곡하며,
/ 종교는 영성을 파괴한다." - 마이클 윌너 (Michael Illner)
이 말이 뺨을 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