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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푸레나무에게로 눈이 내리면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6건 조회 1,665회 작성일 23-10-31 14:33

본문

  

  물푸레나무에게로 눈이 내리면




  1년만에 다시 왔다.

  네 푸르름 사이로 청설모가 노닌다.

  여름 대신 가을이 걸려 있는 우듬지가 흔들린다.

  언젠가 네 머리 위로 내릴 눈을 생각한다.

  네가 눈 사이로 눈발들이 너의 팔다리 사이로

  흐르면 겨울은 깊어갈 것이다.

  사람들보다

  더 신실한 친구가 되어주었던 너를 만나러

  등에 가방 울러메고 터벅터벅 걸어왔다.

  너는 여전히 너,

  야트막한 산등성이 그 자릴 지키고 섰고

  바람은 신호등처럼 나를 너에게로 안내해주었다.

  먼지 이는 길섶엔

  들국화며 코스모스며 토끼풀 같은 것들이

  내 충혈된 눈 속으로 즐거웁게 달려왔다.

  여름엔 새들의 놀이터

  겨울엔 영혼의 늑골이

  되어준다고 네게 헌사했던 내 시구(詩句)도 생각났다.

  점심 먹고 난 뒤 어머니께 인사를 드렸다.



  장산에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오랜만에 왔는데 좀 쉬지 와그라노,

  친구가 거기서 나를 기다릴텐데 가서 보고 오겠습니다.



  내 올곧은 친구, 내 아늑한 늑골이여.

  5년간의 내 아픈 몸을 돌봐주던 손길이여.

  사람보다 더 벗된 이여.

  널 닮은 시(詩) 하나 건져보려 네 그늘에 몸을 말리던 시절

  애인이었던 나무여.

  추운 겨울 이파리들 떠나간 네 둥치와 허리춤으로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리면

  내 낡은 손이라도 꺼내어 너를 데워줬으면.

  시(詩) 나부랭이 적은 종이들을 태워서라도

  네 언 다리 풀어줬으면.



  그 눈송이들이 

  하늘과 기도와 네 늑골 속에서

  꽃으로 잠들었으면.



  이파리 대신 햇살이 걸려 있는 너의 가지들 사이로 

  파랑새가 지저귀고 있다.


  

 

댓글목록

tang님의 댓글

profile_image tang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형용되는 아름다움으로의 여행에서 순전한 순수의 마력에 같이함을 선언했습니다
왕림되는 환타지에 형언하여 이름하는 악성 역성이 마력과의 대결에 이미지 창을 내었습니다
령을 찾으려는 아름다움으로의 귀환이 성성한 아름다움 굴레와 함께 했습니다

너덜길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좋은 시라 하시니 부끄럽습니다.
저에게 좋은 시란 늘 마음에 간직할 수 있는 것인데,
이 시가 그런 건지 모르겠습니다.
좋은 시
좋은 사람
좋은 나무, 꽃들.
그리고 내게 머물고 있는 이름들.
물푸레나무처럼 올곧고 아름다웠으면,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
좋은 저녁 되시길.

고나plm님의 댓글

profile_image 고나plm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냥, 한달음에 미끄러지듯 읽어내려갔습니다
내려가면서 햇살에 눈부신 물푸레나무 하나 하나를 만지면서요
좋은 시, 잘 감상하고 갑니다~^^

너덜길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고나님, 감사합니다.
읽으시고 다감한 말씀 남겨주셔서.
시처럼 살진 못해도,
시를 따라 살려 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다복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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