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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 인간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사마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60회 작성일 26-01-23 15:13

본문

투명 인간

 

 

 

장화가 외출 채비를 한다

모자를 쓴 투명이 장화에 발을 넣고

가방을 메고 걸어간다

 

모자는 허공과 친분이 두터웠는지

허공에 덩그러니 떠 흔들리면서도

떨어지지 않았다

 

지난밤 비가 온 탓인지 길이 온통 진탕이다

투명의 움직임에 따라 장화가 발을 담그며 진흙을 짓밟는다

그 위로 모자가 천천히 따라간다

 

그것을 미처 보지 못한 자동차가 그 옆을 가까이 지나간다

모자가 펄럭이고 장화가 화들짝 놀랐을 땐 이미

투명으로 흙탕이 점점 그려진 뒤였다

 

투명이 기분 나쁜 표정을 짓고 소리를 지르지만, 투명이므로 들리지 않는다

자동차는 콧방귀를 뀌며 뒤돌아보지 않는다

자동차 뒤꽁무니로 뜨거운 연기가 오르는 것을 보니

투명의 눈총이 꽂힌 것이 분명하다

 

멍하니 서 있는 투명이 좀 그래 보였던지

모자가 내려와 흙탕을 툭툭 털어낸다

투명 위로 번진 진흙은 투명이 움직이는 대로 움직인다

 

가방이 열리고 담배 한 개비와 라이터가 나왔다

한 개비의 담배가 허공에 가로로 눕고

지퍼 라이터가 번쩍

이마로 맨바닥에 헤딩하듯 불을 켜는 순간

연기는 두 개의 풍선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연기가 회오리를 만들며 잠시 풍선 속에 머문다

이내 문어 주둥이 같은 형틀을 만들며 연기가 뿜어졌다

풍선은 다시 조막만 해지고

허공으로 연기가 흩뿌려진다

 

담배 끝이 빨개지는 만큼 풍선은 다시 커지고

풍선이 쪼그라들 때마다 연기는 사방을 춤을 췄다

가끔 투명이 의도한 대로

원동기처럼 동그란 도넛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연기는 허수아비의 형체만큼

아니 투명의 크기만큼 비껴갔다

연기로 만들어진 형틀 속에

투명의 실루엣이 잠시 보였다

 

이제야 투명의 표정이 확인된다

아직 두 켤레의 장화는 진창에 박혀 있다

투명은 오늘의 외출을 후회하고 있는 눈치다

 

외출을 포기하고 다시 돌아가려는지

장화 코가 방향을 바꾼다

모자가 모처럼의 외출인데

웬만하면 그냥 가자고 보채는 눈치다

 

꽁초가 한 바퀴 회전하더니 자세를 잡는다

많이 본 듯한 자세다

이내 허공으로 포물선을 그리며

하늘 높이 치솟았다가 떨어졌다

치익-

진흙탕으로 머리를 처박는다

 

날아가는 각으로 보아

엄지와 중지 사이에 끼웠다가

튕겨 올린 모양이다

 

포물선이 마음에 들었던지

장화 코가 다시 처음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한두 걸음 걷던 장화가 이번에는

왼쪽 장화만 움직인다

오른쪽 장화진 진창에 빠져

투명한 발만 남았다

 

두 발짝 앞서가던 왼쪽 장화가 되돌아왔다

쩌억 소리를 내며 오른쪽 장화가 들어 올려진다

그러는 사이 대롱대롱하던 모자가

철퍼덕 진창으로 떨어진다

 

오른쪽 장화가 높이 솟구쳤다가 내팽개쳐지는 것으로 보아

투명의 가슴이 종잇장처럼 구겨지는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흙탕으로 스민다

아직 풍선 속 연기가 남아 있는데

또다시 담배 한 개비

한 바퀴 공중회전을 한 뒤 불이 붙었다

 

모자며 가방이 땅바닥에 뒹굴고

신발도 뒹구는 것으로 보아

오늘 외출은 글렀나 보다

 

인공호흡 시킬 때 손으로 쥐어짜

공기를 넣는 인공호흡기처럼

연신 연기 주머니가 커졌다가 분출하기를 반복한다

 

금세 담배 한 개비가 다 타고

새로운 담배에 또 불이 붙는다

연기의 형틀로 보아

투명은 다리를 꼬고 앉아

고개를 떨어트린 자세였다

 

한참 뒤

신발이며 가방이며 모자가 한곳에

뭉뚱그려 놓여 있고,

투명이 사라지는 쪽으로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함께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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