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나무처럼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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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나무처럼 서서
헌 소쿠리에 든 귤을 까서 너에게 주고
먼 벗, 군자란과 안시리움 사이를 좁혀 놓고
문득 거실 벽에 붙여 둔 시들을 읽어보다가
며칠 전 받은 새 달력의 날들을 세어보고
따듯한 우엉차를 새로 산 머그잔에 따라 마시다가
밤이 오면 서로의 늦은 귀가를 마중하고
몸보다 먼저 도착한 마음을 껴안았지.
우리는 나무처럼 서서
밤새 타들어가는 자작나무 모닥불을 바라보다가
내 사랑도 저랬나, 생각다가 까던 귤을 마저 다 까고
언제부턴가 눈물 없는 메마른 눈을 탓하고
잠이 덜 깬 얼굴로 화장실 물청소를 하다가
그보다 더러워진 마음을 닦아내기도 했었지.
우리는 나무처럼 서서
가난한 마음이 복 있는 이유 속을 살다가
뒷산 허름한 간이역 외로움을 닮아가다가
사뭇 나무와 함께 수평선으로 누울 날 오면
초록 잃은 검은 가지 끝에 하얀 시 한 편 걸어 놓고
노을과 함께 푸르른 대답 속으로 들어가겠지.
그래
우리는 나무처럼 서서
한 평 흙을 차지하며 살다가.
댓글목록
수퍼스톰님의 댓글
나무처럼 서서 수많은 사연의 뿌리를 묻고
오늘을 건너는 시, 고맙습니다.
행복하고 건강한 주말 맞이하십시오.
너덜길님의 댓글
예 감사합니다.
나무처럼 강건하시길 빕니다.
깊으신 마음 잘 받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