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草葬의 풍경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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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1,360회 작성일 20-08-16 07:48

본문



1. 

어제 보았던 풀잎들과 풀잎들 사이에 빈 틈이 있었다. 

그 틈은 내가 마지막 보았던 그때보다도

더 넓어져있었고 더 은밀해져있었다. 융프라우 녹아든호수에서 

비췻빛 물에 마악 녹아들려는 풀잎 하나

꺾어들었을 때,

얼굴과 표정 사이 거대한 빈 틈이 있는 

소녀가 속삭였다. "당신이 가야할 곳으로 가세요. 사랑이 

많은 이여. 저 무수히 많은 풀잎들 나부끼는 속에 있으면서도

당신만 혼자이군요."

내가 돌아서 산협을 내려올 때 

그녀는 내 등 뒤에서 말했다. "만일 당신이 저 

비췻빛 물속으로 걸어들어간다면......"

그녀의 그 다음 말은 바람소리에 가려 들려오지 않았다. 


2. 

그로부터 한참이 지났다. 

내 늑골은 섬과 섬 사이를 너무 오래

떠다녔고 폐는 썩은 밀림의 공기와 고산지대 건조한 바람과 

폭포의 갈기갈기 찢긴 물방울 비명을

너무 오래 들이마셨다. 나는 혼자 

중세시대의 기계탑들이 우뚝 솟은 광장을 배회하였으며 

단두대와 철처녀와 고문대 사이를 걸어갔고 

주홍빛 기둥들이 신비로이 박혀있는 원시림을 사슴 따라

들어갔었다. 건조한 평지에 돌탑들이 버섯처럼 무수히 솟은, 

촛불과 유리종으로 장식된 계단을 올라갔었다.


3. 

어젯밤 아파트 베란다에 나가 

빗소리를 듣다가 

빗소리와 빗소리 틈으로 지나가는 그녀를 다시 만났다.

그녀는 자기가 지은 시라며 

한 줄 문장을 들려주었다. 

"그는 자작나무 한 그루 외론 설원에 혼자 걸어들어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 얼굴은 보이지 않았으나 

나는 그녀 대신 밤하늘이 쓸쓸히 미소짓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내가 쓴 시를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내가 너무 외로웠거나 

내가 탔던 비행기나 보트가 너무 외로웠거나 

나와 위태로운 물 사이를 

가로막았던 격자무늬 뱃전이 너무 외로웠거나 

그 또한 내 살아왔던,

느슨한 궤적을 격렬한 예각으로 바꾸며 살아왔던

상흔일 것이다."

그때 잔잔하게 흩뿌리던 비가 더 굵어졌다. 

나와 그녀는 함께

채찍을 맞는 것 같았다. 

그녀가 굵은 빗줄기를 맞으며 

몇번이고 내 시를 읽는 것을 나는 

바라보았다. 



 




 

 

 


댓글목록

날건달님의 댓글

profile_image 날건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융프라우에서 울려 퍼지는 샘을 지키기 위해 소녀가 달려가고 있습니다. 내가 피터가 되고 그대는 클라라인가요?

코렐리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풀잎 사이의 틈" -> "얼굴과 표정 사이에 틈이 있는 소녀" -> "빗줄기와 빗줄기 사이의 틈" -> "시를 두고 나와 소녀 사이의 틈"
다 같은 이야기입니다. 지금껏 살아온 것들을 반추해 본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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