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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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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397회 작성일 20-06-25 07:35

본문



중세풍의 도서관을 닮은 텔레비젼 스크린 속으로 들어갔다.


재작년 혼자 찾아갔던 하쿠초로(白鶴) 료칸의 오카미는 팔 한 쪽이 없었다. 어린 것이 치마폭을 꼭 붙잡고 있었다. 전쟁이 끝난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삼나무숲 청록빛 다다미 위에 혼자 각혈하는, 

밤 내내 계곡물이 졸졸 창밖으로 흘러가 원숭이들이 몰래 얼굴 씻는다는 계곡 달빛 흩트리며 간절하게 파문 일으키는 폐선(廢船) 뻥 뚫린 옆구리 속으로 그 새하얀 종아리의 소름은 뛰어들어가 버리는 것이었다.


운무 자욱한 책을 한 권 꺼내들면 화소(畫素)수가 모자란 종이 위에 누군가 써놓은 텟줄이 파르라니 떨리고 있었다. 


상처 많은 밤꽃 위를 모로 기어가던 홍게 한 마리는 갑옷 입은 교각(橋脚)을 절고 있었다.


촛불 하나로부터 수많은 색채들을 읽어내어 인류 역사를 통찰한다는 수염 긴 삼나무숲속, 

그 많던 소리들은 모두 어디 갔을까?


복도를 따라 무수히 많은 똑같은 책장들 속에 무수히 많은 똑같은 책들이 꽂혀 있었다.


베니스에서 거제도까지 통영에서 아프리카 사반나까지 내 폐는 닳아버려 들숨 날숨마다 부패한 복숭아향내를 내뿜는다.


복숭아는 전쟁 중에 폭탄을 가슴에 안고 폭사(爆死)하여 너븐숭이 갈갈이 찢긴 피아노 건반 위로 하루 종일 토막난 팔다리가 흘러내렸다는 것이다.


나부끼는 범나비를 책으로 오해한 사서(司書)가 책장(冊欌)에 펄펄 뛰는 나비를 꽂아넣은 일이 있었다고 한다. 나비는 뽀얀 알들을 책표지 속에 낳고 만발한 원추리꽃이 책장(冊欌) 위에 애벌레들을 한가득 얹고 비단실같은 넝쿨이 검은 목재(木材)를 타고 가시를 세워 활자 안으로 기어들어갔다고 한다.


살점 뜯긴 나비들이 점점이 절두산(切頭山) 삽화 속을 날아다닌다고 한다. 


산호가지 끝이 뾰족하다.


이 도서관에는 다자이 오사무와 야마자키 도미에가 책표지를 열고 들어가 시퍼런 넝쿨로 함께 목을 맸다는 사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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