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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부치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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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피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206회 작성일 20-03-11 22:43

본문

친애하고 싶은 하느님께.

있는지는 사실 지금도 의심하지만
안녕하세요 하느님
하늘 어딘가에 걸려 있어도 잘 보이죠
내 알 바 아니지만요

오래된 푸념 하나 해 볼게요
씨발 세상은 내가 좋은 사람인 줄 알아요
아마도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 보이니까
보통 사람이면 좋은 사람인 줄 알고
제멋대로 가늠하고 그러는 거겠죠
근데 좋은 사람이라는 건 웃기던데요
좋은 사람이라는 거 다 쓸데없어요
그건 자기 자신에게 좆같다는 소리라고요
반대로 남에게 좆같은 사람은 말이죠
스스로에게 너무나도 멋진 사람이에요
그래서 나는 차라리 좆같은 사람이고 싶은데
왜 항상 좋은 사람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걸까요

세상의 좋은 것은 모두 나한테서 지랄같이 멀어요
마치 당신처럼 말이죠
하느님 당신은 내게서 너무 먼데
붙잡는 사람마다 다들 내 곁에 당신이 있대요
왜 내 시선 바깥으로 자꾸 숨는 거죠
내가 무슨 숨바꼭질이나 할 정도로 보이나요
세상 모든 것이 다 당신의 의도대로라면
내가 좋은 사람인 것까지도
반대로 내가 내게 좆같은 사람인 것까지도
당신이 모두 짜고 치는 고스톱인가요
다른 사람은 심지어 당신에게도 좆같을 거고
나는 그래도 좋은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데
이것도 당신의 그 잘나신 의도인가요

그리고 나는 자명종이 아니란 말이에요
시간 되면 좋은 말씀 좋은 소리 내뱉는
그런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았는데도
자꾸 되라고 하네요
세상이 진짜 미쳤나 봐요
내가 울면 웃고 내가 웃으면 울고 있으면서
항상 상황 파악 안 되냐고 되레 따져 묻잖아요
씨발 내가 대체 뭘 잘못했나요
이렇게 엇박자 내고 싶어서 엇박자 냈나요
마치 그럴 생각이었다는 듯이 제멋대로인 세상이
나보고는 제멋대로 굴지 말라고 자꾸 때려요
피가 나도록 때리는데도 또 때려요
그런데도 그게 당신의 숭고한 의도래요

아마 수차례 부쳤는데도 답장 하나 않는 걸 보면
하느님 당신은 차라리 없는 편이 나을 거예요
사실 있다고 생각하고 몇 차례쯤 써 봤어요
근데 실은 좆나 쪽팔려서 태워버렸어요
생각해 봐요, 있는지도 없는지도 아무도 말 못하고
다들 대충 유야무야 얼버무리고 넘어가는 존재를
나 혼자 있다고 믿고서 거기다가 딸이나 쳐봤자
대체 뭔 소용인가요
그래서 초장부터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른다고 했어요
있다면 이거 주워들어서 읽고 버리든 말든 하겠죠

어쨌든 하느님 당신은 있든 없든
천하에 둘도 없는 씨발새끼예요
씨도 안 뿌린 밭에서 밀과 보리가 자라서 저절로 숙이든
나자마자 두 발로 일어나서 내가 유일한 킹왕짱이라 하든
세상에 내가 봐왔던 그 어떤 형태로든
나타나기만 하면 당신은 그 순간부터 씹새끼예요
아무래도 다음부터는 이따위 알량한 편지 몇 장보다는
직접 그 위로 올라가서 맞장 좀 떠 봐야겠네요

있다면 말이에요, 씨발, 진짜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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