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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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01
1
손바닥을 세운다
움직이지마
시퍼런 삽날이 지나간다
2
그 자리 누구의 비명인지
두 토막으로 갈라진 틈새에 꿈틀거림이 있다
끼워진 책갈피
녹쓴 붉은 꽃잎을 만지듯
어깨 너머로 숨어드는 여자
기체화된 배설물을 분출해 준다
뽀봉 와중에도
정신없이 기웃거리는 시선이 있다
3
그냥 꽃뱀이예요
수 십번 물려도 괜찮은
통통하고 큼지막한 소나기가 지나갈 것 같은 오후
습한 열기 속에 물렁한 두쪽
단백질 물두부 같은 숨결이
내 등뒤에 붙어 출렁인다
한 삽
표면 아래 덮혀지는 잔해를 꾹꾹 눌러 닫는다
4
갈색으로 덮혀가는 잔디밭을 향해
8월의 낮아지는 태양이
초록을 증발 시키고 있다
노란 예인선 물결이 출렁이는 은행나무
애기똥 냄새가 미세하게 날아든다
공주님 가시는 길마다
빨간 카펫트를 깔아 들여야 하나요
5
많이 놀랐나 봐요
응
이 우주선에 음성지문 장치는 또 뭐고
가는 곳마다 안면인식 기계음이 잖뜩이데
나이 먹기가 겁나는 시대잖아요
가관이데요
좋은 구경도 시켜주시고요
자기는 내가 놀라자빠지는게 재밌었단 말이야
혹독한 폭염이 남기고 가는 창문 뒤로
소파에 쿠바 시가 같이 꼰 다리가 덜렁거린다
요가 가부좌 자세를 취하는 여자
파란 삼각 팬티가 다 보이네요
자기가 언제 신경 썼다고 새삼스럽게 그래
뭐 제 것인가 해서요
확실히 그 흰티셔츠는 제것 아님니까
남자가 쫀쫀하게 그래서 쓰겠어
진정 됐는지 반격까지 하고 있다
브라는 좀 걸치고 사시는 게 예의는 아닌지요
여긴 누드촌도 아니예요
6
예술품으로 보면 되잖아
자기는 꼭 외설로 보는 것 같더라
줘도 못 먹냐 놀리는 건 가요
절대적인 직립 자세를 가질 수 없는 안개 같은 눈동자 시선이 흐른다
휘리릭 넘겨지는 베스트 셀러 페이지로 부채질이라도 해드려 하나
흔들흔들 표류하는 시처럼
QLED 검은 벽지가 두 사람 시선을 째려본다
내가 여기 옆을 탁 탁 안쳐도
요즘 알아서 척척 달라붙는 거야 좋은 데
너무 친한 척 하는 게 거북하더라
제가 무슨 파블로프 개인가요
뭐 그렇다는 것이지 파블로프는 또 뭐야
아주 무식을 자랑삼아 직빵으로 묻는 순간이 많아졌다
알아서 공부하세요 전에는 잘 하시드만요
엉덩이 좀 치워 덥잖아
왜 제 것을 치움니까
아쉬운 사람이 치워야 하는 게 아닌가요
분위기를 확 깨는데 자기 재주는 너무나 특별나더라
더 깨 드릴까요
7
그 뱀 있잖아요
아휴 정말 특별하네
그 가을 독이 오르고 있던 그 까치 독사에 물렸으면
여기 이렇게 느긋할 수 없었을 걸요
어찌 되는데
눈알이 반짝반짝 빛난다
직빵은 아니더라도 헬기나 앰블런스가 왔어야 했겠지요
곁에는 자기가 있었잖아
저는 이빨이 부실해서 빨아대 다가는 저도 함께 가게 되는데요
제가 뭐하러 위험부담을 짐니까
그럼 왜 꽃뱀이라고 했는데
선의 거짓말이란 게 있잖아요
당황하면 조준이 안되어
삽날이 엉뚱한 발가락을 날릴 수 있었단 말이지요
자기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치를 떨고 있다
생명의 은인이라는 거야
그래서 이제는 그 은혜를 갚을 때까지 곁에 있으면 되겠네
뭐 그렇게까지 멀리 가고 싶지가 않군요
헝클어진 희미한 실망감을 느끼는지 눈까지 감고 있다
8
제 등뒤에서 이상한 냄새는 못 맡았나 봐요
내가 죽게 생겼는데
그럴 겨늘이 있겠어 자기야 말로 창백하던데
그럼 저기 잔디밭에서 사람이 죽게 생겼는데
이어가지 못하는 말에 잔뜩 희망을 걸고 있다
하기사 이런 미인이
이런 촌스런 구석에서 낑낑댄다는 게 말이 되겠어
저는 그냥 여기서 죽으면 곤란하다 느꼈을 뿐이예요
왜
낯 모르는 사람들이 제 사적인 공간에
들락거리는 게 싫으니까요
완전 실망이네
뭐 실망하면 사는 게 인생이 아닌가요
무의미로 흩뿌려진 잡초 같이 흔들리는 눈꺼풀이 있다
키 큰 숲속의 뱀처럼
미끄러지듯 온기가 빠져나가는 엉덩이
진실은 늘 다르다는 걸 아는 듯 했다
9
우리 사이는 뭐야
사이가 뭐라니요
그러니까 애인이거나 친구
뭐가 있어야 사이가 있는 게 아닌가요
아무 사이도 아니잖아요
아무 사이도 아닌데 곁에 있는 거야
나는 이렇게 들어와 있잖아
밥도 같이 먹고 한 지붕을 이고 같이 살잖아
그럼 투숙객인가 보죠
요금도 안 내는 투숙객도 있나
주인이 속이 넓은 사람인가 보죠
아니면 예외라는 게 늘 말썽이잖아요
쫌생이는 아니고
좀 생이 넉넉한 사람이라는 말로 이해하고 싶군요
창가에 작은 참새들이 구름떼처럼 일어서고
수수께기 속으로 순환하는 숨결만 남는다
산허리 절단면을 관통한 길가에
담쟁이 손이 그 푸르름의 풍성함으로 쓰다듬듯이
비스듬한 그림자가 기울고 있었다
돛을 발견한 로빈슨 크루소 같이 뭔가
단어를 문장을 발견한 듯이 음음 목소리를 가다듬는 여자
버터에서 뒹굴다나온 팝콘처럼
큰 걸로 먹을 자격이 충분한 뭔가가 있다
무척추동물 말미잘이 산호초에 붙어 척추를 가지듯이
그짓 하다 걸리면 확 잘라버릴 거야 같은 단호함 같은
자기 옷도 마구 입고
자기 물건도 마구 건들잖아
그 투숙객이 낯이 두꺼운가 보죠
밤에 별도 같이 보잖아
제 별이 아닌데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어 아쉽긴 하네요
투숙객이 화장실도 같이 쓰남
무슨 소리예요 여긴 따로 손님방에 있잖아요
그건 그렇지
10
그 냄새라는 건 뭐였는데
기체화된 배설물이요
자기는 말도 참 요상하게 하려고 애를 쓰더라
그냥 방귀라고 하면 되잖아
일단 눈치 채면 안 그럴 수가 없다
낯설게 하든 말든 말이란 아우토반 같은 것이다
생각없이 살기 싫으니까 말장난으로 지루함을 달래는 거랄까
이 여자는 한 방 먹였다는 속시원한 쾌감을 느끼는 듯
완전 꼴아보는 눈빛이다
파블로 피카소 같은 그림을 왜 그리세요
그냥 사진으로 찍으면 될텐데 말이죠
그와 맞찮가지요
표현주의죠
11
여행도 같이 가잖아
무슨 여행이요 들러붙은 껌딱지잖아요
내가 껌딱지란 말이야
말이 그렇다는 비유지
어떻게 미인이 껌딱지가 될 수 있어요
미인이라는 단어에 한 껏 취해 있다 몽롱한지
없는 머리칼을 쓰다듬은 여자
라푼첼에서 왜 니키타로 테라포밍을 시도 한 것인지
궁금하지긴 했다
그렇게 귀찮으면 가라고 하지 왜
가라고 해서 가고
오라고 해서 오는 게 어디 여자인지 몰라도
뒷골목 여자일 게 틀림없어 보이는데
그런 여자가 아니잖아요 우리 수녀님은
처음에 카르멘 그리고 공주님
이제는 수녀님에서 니키타로 오락가락 하네
도데체 내 이름이 어떻게 되는 거야
여긴 자유 민주주의 국가잖아요
이름도 마음대로 못 짓나요
나처럼 이쁜 여자한테는 좀 다정다감해야 하는 거 아니야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요
그 왜 좀 작작 써드세요 지겨워 죽겠어
혼자 살아가는 게 아니잖아
혼자 살아가는 게 저는 좋아요 아줌마
왜 또 아줌마로 탈바꿈한 거야
곧 할머니로 가겠네
할머니 다음에는 또 뭐가 있는데요
꼬부랑 할머니
그 다음은요
자기가 시인이니까 자기 마음대로 해봐
그 잘난 상상력에 기대를 잠깐 걸어볼테니
납골당 사진이요
12
납골당 사진까지 왔으니
참 긴 여행이였네 자기랑 나랑
제 이름은 뭡니까 자기에 저는 지쳐서 목이라도 긋고 싶어지는데요
자기가 자기지 뭐야
좀 화가 다운 색감을 발휘해 보세요
작품전을 가져보지 못했는데 어떻게 화가가 되겠어
시집을 가져보지 못한 저한테 시인이라고 부르잖아요 아줌마
뭐야 지금 나랑 그 옛날 아주 많이 한
여자라는 구석기 시대 우스게 소리로 웃으라 말하는 거야
지금 농담 따먹기 처럼 보여
투숙객의 품위를 지키면 안될까요
생명의 은인이였던 것 같은데요 요 몇 시간도 안되는
짧은 은혜였던가요
음음 이 무슨 에헴 짓거리에 뒷짐자세인지
요가 자세인가
뭐 그림만 그린다고 다 화가면 크레파스를 든 꼬마들도 다 화가겠네
화가나서 화가인가 보죠
자기는 자기 밖에 몰라서 자기야
도를 깨친 자기라서 도자기 일까요
저기 씽크대 왼쪽 그러니까 좌측 중간쯤에 볶아둔 원두커피가 있던가
뭐 저쪽 이디오피아인지 아닌지
거기서 최고로 굴러먹었다 저기서 구르고 있다던데
다른 여자한테도 그렇게 굴러먹는 거야
아 옛날에 까치도 은혜를 갚으려
무슨 거대한 종을 대가리로 쳤다는데
까치에서 대가리, 머리라고 순화하면 좋은데 왜 굳이
대가라는 단어를 골라쓰는지
기분 잡치게 하려고 아주 애를 쓰고 있네 자기
자기란 단어 줌 작작 쓰시고
좀 싱씽한 싱싱한이 아니라 싱씽한 이름 좀 지어주세요
작작이란 단어를 꼭 그렇게 써야겠어
말꼬리를 잡다가 뒷발에 차이면 골로 간다더군요
골로 가면 좀 어때 차보라지
그 뱀에 꽉 물려서 죽을 걸 그랬나봐
왜 물려도 꽉`입니까
귀엽게 콕 물려서 갈걸 그랬어가 더 아름답잖아요
제가 커피를 내릴때까지 생각해 두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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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여자한테도 이렇게 대하는 거야
나도 모르지요 다른 여자가 있어 본적이 없어서
나 따라 하는 거예요
왜 내가 따라 하면 안되는데
이것도 내 말투를 따라하잖아요
자기가 무슨 의장등록이라도 했다는 거야
커피를 타 온 사람이 저라는 걸 잊는 듯 하네요
커피값이라도 내라고
아주 작살을 내겠다는 얼짱 각도 째려보기인가
이름을 준비하셨어요 아니면 커피값을 내던가요
그래 응
성은 잭 이름은 다니엘
어이쿠 이런 성까지 지어주시다니 저녁밥도 제가 준비해야겠네요
그럴 줄 알았죠
제발 좀 제`에`에` 발
제발 밟지 말아달라는 게 아니라요
제 사생활 공간은 좀 탐색을 중지해 주시면 안 될까요
뭐가 그리 궁금한게 많다고 그러세요
그거 찾아서 마셔주지 않으셔서 참 고맙기까지는 하지만
정말이지 저 구덩이에 파묻혀야 끝날 호기심인가요
저 구덩이는 다 메웠잖아
다시 파내려면 힘들겠네 뭐
꼬마 포크레인이란 게 괜히 있겠어요 부르면 금방 온다니까요
까마귀가 참 많은 숲이니
잠깐 도끼의 쓰임새가 빗나갈 수도 있겠죠
토막 토`오`오`마가
토마토가 썰어지듯이요
자기 완전 말장난이 장난 아니게 실감나네
하지만 왜 저기 저먼 행켈 칼세트가 더 실감나잖아
저 씽크대가 바로 눈 앞에 있는데
가까이에서 비유를 찾아야 하지 않았어
아주 까놓고 대드니 더 귀엽까지 하고
쌍도끼 눈알이 아주 날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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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 곁에는 늘 게슈타포가 따라 붙죠
이제부터는 게슈타포라고 불러도 될까요
뭐 어감이 좋긴 한데 너무 긴거 아니야
그 남자 애인 에바 브라운도 있던데 에바 브라운
에바는 늬앙스가 애 봐로 아줌마 맛이 나네
슈타지는 어때요
스타지 스타야 같은 어때요
그 딴거 다 싫고 그냥 니키타로 불러
검지 손가락 권총에 입바람을 날리는 여자
가만 지금 이게 아니잖아요 제에에 에 발
에 하나 더 붙여서 애먹이지 말고 그만 좀 뒤져주세요
뒤지다가 뒐질 수도 있어요 오늘 그 죽음
그 끝을 막아줬잖아요
이 남자
거 돼게 은혜 은혜 노랠 부르네
그만 좀 생색내라니까
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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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의 관심은 모조리
무죄라는 말 몰라 잭다니엘
다니엘은 빼야겠다 너무 길어서
그냥 잭이라할께 잭 안 그래
어 뭐뭐 이게 뭐니
너무 이국적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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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잭이 되니까
짹짹 참새 같잖아
잭 너무 나한테 관심이 없는 거 아니야
미안하지도 않나봐
왜 제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요 그럴려고 그랬지
흉내까지 기가막히게 혼자 논다
17
쿠바 여인네들이
그 허연 허벅지 안쪽에 대고 말았다는
수제 하바나 시가
왜 자꾸만 허벅지에 시선이 꽂히는지
18
이 여자는 일사천리 사채 같이 눈치가 갔는지
왜 쳐다만 보는 거야
아껴 먹으려고요
19
근데 왜 여기에서는
그림을 못 그리게 하는 거야
그 물감질 투성이는 저 도시에서 충분하잖아요
저는요
여기서 만큼은 내 멋대로 살고 싶군요
그럼 저기 잔디밭 그늘에서 그려도 되잖아
20
생명의 은혜를 그만 베풀고 싶네요 아가씨
눈꺼풀을 덮고 있다
그래봐자 투명 우산처럼 보인다
왜 아줌마에서 다시 아가씨로 갔을까 하는
이 여자의 투명한 눈동자
마치 빌딩 주변에
주둔한 금연 표지판처럼 눌러붙어
내 꿈틀거리는 욕망을 금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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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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