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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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02
1
단 한번뿐인 풍경일 것이다
벤치형 그네에 흔들리는 오후
까닭없는 침묵 곁에 앉았다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야
우리에게 어떤 게 있는데요
나는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고
니키타는 간간히 슬금슬금 그네를 흔든다
GI조라고 했으면 어땠을까
팔레트 탄창에 유화 물감을 끼우고
붓을 총으로 삼아 캔버스를 표적을 날릴 것이고
나는 거대한 오로라를 완성해서
이 여자의 뒷배경으로 서 있을 것이다
마음이 그리 중요하지 않는 시대
유행이 최고라 할지라도
프랑스에서는 오마주
우리에게는 표절이지만
원본을 알고 모르고의 차이겠거니
혹은 자의적인 노출이거나 자의적인 숨김이거나
날씨가 폭염이라 이리 가볍게 입는 것인지
아님 뻔한 이유인지 누드촌이 된 걸까
감꼭지처럼 힐끗힐끗 넘지시 목덜미를 아래 가슴골에 흐른다
올록볼록 곡선이
자기 그러니까 잭 다이엘
우린 볼짱 다 본 사이면서 왜 그렇게 자꾸만
끈적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거야
예술품 감상에도 죄가 되나요
방식이 문제라는 거 아니야
보고 싶어서 보는 게 아니라 보여서 보는 것 뿐인데요
진공 청소기의 흡입력을 가진 눈동자
자기는 어쩔때 보면 아주 아이 같다니까
여자 안에는 늘 소녀가 있는 거 아닌가요
남녀가 사랑하는 건
내용물인 소년과 소녀이지 껍데기 어른은 아니잖아요
3
여기 우주선과 정거장 이름은 뭐야
에덴이요
그럼 우린 아담과 이브가 되는 거야
그래서 저기에 사과나무가 있는 거야
왜 말이 없는 거야
사과나무 그늘에 깨문 이빨 자국이 하나 뒹굴고 있어서요
선악과 이거나 지식의 나무인데
빌 헬름텔의 사과나무나로 착각하고 계신듯 해서요
이 누드촌 같이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게 됐으니
아예 벌거벗고 다닐 것 네요
4
아 배고파
짝수 날이니 싹수가 노란 날인 것 같네요
저 붉으스레 익어있는 복숭아 뼈
녀석들도 참 맛있게 깨물어 볼 것 같네요
그게 또 무슨 요구르트 빨대 꽂는 소리야
이 더운 날
저는 신발 끈 구멍이 20개쯤 달린 워커
랜드로바를 신고 나왔잖아요
누구는 덜렁 쓰레빠짝을 끌고 왔는데요
그래서 어쨌다는 건데
삽날에 두 동강이 난 녀석들이 아마도 복수의 순간을
뭐 나라도 그랬을 테니
스르륵 쓰르륵 풀잎 사이든 잔디풀 사이든
아마도 매복해서 기다릴 터인데
공주님은 참으로 운이 따랐나 봅니다
어린 왕자의 보아구렁이가 삼킨 코끼리 모자도 아니고
아나콘다의 갈라진 분홍빛 혀와 그 칼날을 세운 송곳니
아흐 무서워라 콕 물리면 아흐
복숭아 뼈 아래 덜렁거리던 쓰레빠가 분리 된다
흔들림도 오싹한지 벤치 그네도 멈춰섰다
공주님은 운이 참 따르니까 또 따르겠죠
저는 저녁이나 준비하러 가야 겠는데
5
날 버리고 가겠다는 거야
뭘 버릴 게 있다고 버림니까
운에 맡겨야죠
아 저기 막대기 하나 꺽어다 드릴 순 있겠군요
휙휙 풀숲을 치며 겁주면 녀석들도 피하겠네요
저는 얼른 공주님 식사를 챙겨야 하니 그럼 이만
잠깐만 지금 밥이 문제야
이 인간 이거 완전 뭐야
그럼 공주님이 식사 준비라도 하겠다는 건가요
오늘 저녁 내가 준비할테니
막대기를 꺽어다 드리지요
긴 걸로 드리려 했는데 반 토막 길이쯤이면 되나요
원래는 3분의 1인데 제가 인심을 쓰는 겁니다
저녁 한 끼이니까요
이 무슨 뿌붕 소리야
저 더러 어쩌라구요 업어달라는 건 아니겠죠
그건 좀 비싼데요
뭐 공주님이 저 도시
화실에 가시는 날까지 식사 준비를 누가 하면 될까요
어머머 이 남자 인간 말종으로 뒹굴려고 작정한 거야
나도 흉내놀이를 해본다
어머머 어머니
저 여자는 복숭아 뼈에 흉악한 송곳니를 꽂으려 작정을 했나봐요
어여쁘신 우리 공주님 식사가 늦어지면 안되겠죠
알았어 알았다니까 3일
저도 인간이니까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자원봉사하는 셈 치죠
6
어머머 이 남자 또 뭐야
배낭도 한 번 매본적이 없나 봐요
어깨에 걸면 위아래로 텅텅 쳐보는 거예요
허리끈을 조여도 보고
엉덩이 부위도 톡톡 쳐서 잘 매졌나 보는 거죠
인체 공학적 설계인지
꽉 조여지는 게 죽이는 배낭이네요
명품이라는 거야
쿠션 탄력도 죽이는군요 덜컹덜컹
성희롱 아닌가
지금은 그냥 배낭이잖아요 배낭한테도 인격이 있나요
아 코알라
그렇게 팔뚝으로 목조르다가는 도중에 쓰러질 것 같군요
출발도 안했잖아
이 시대의 시를 규정하는 좋은 시
당겨진 방아쇠요
눌러버린 버튼이죠
내가 좋은 시라는 거야
그것 보다 더 좋은 걸요 저는 흐흐흐
자 출발
7
잭 자기는 올해의 휴머니즘 상을 받을 꺼야
흥흥 뭐 하는 거야 또
잭 하니까 훔쳐 마시지 않아나 해서요
훔쳐 마셨으면 어쩔 건대
저 녀석들 저녁 식사로 던져버리지요
무슨 남자가 쫀쫀하게 유성팬으로 줄을 그어 놓았더라
무슨 여자가 무슨 호기심이 그리 많은지
그 남자도 참 안됐죠
왜 이렇게 천천히 가는 거야
예술품 운반은 원래 그런 거예요
정말 맹세코 같이
8
읽어도 읽어도
계속 새로운 똑같은 시 같이
이 여자를 모르겠다
9
에어백 쿠션이 죽이는데요
저 우주선에 들어가서 죽어주면 고맙겠네
극지방 만년설 홍수 같은 시간
갈코리 나이키 같이 지나가는 눈짓이 있다
아 샐러드
토실토실 오동통한 방울 토마토가 새처럼
숭숭 날아다니는 마요네즈 구름
저기 창문 밑에 텃밭이 참 싱싱하겠죠
사나흘 묵은 식빵처럼 쌩까고 있는 여자
저기 작고 귀여운 저 녀석들
한 입에 꿀꺽 아흐
인샬라(신의 뜻대로)
없는 소매를 걷어 올리듯
무슨 뜻이야
님포메니아보다는 좋은 뜻이요
아주 소원풀이를 하겠다는 이건가
두 다리 허리끈이 조여지고 목조르기를 한다
차라리 못 먹을 바에야
여기서 내리시는 건 어떨까요
우글우글 발목을 노리는 녀석들을 보긴 본 것 같은데
지금 멈춰 서는 거야
버저를 누르지 않았나요
알았어 알았다구
가래침을 샐러드에 섞고도 남을 여자
패턴을 읽어낼 수가 없다
10
퍼스트 레이디죠
먼저 한 입
문장을 준비해놓고 기다릴 것이다
11
짝다리 패션으로 팔짱을 끼고 있다
찌그러뜨린 캔맥주 깡통 몇 개
시큼하게 향기로운 하얀 마요네즈 구름에 떠 있는 방울 토마토
배불리 먹었다고 없는 배를 두들기고 있다
꺼억꺽 가스를 쏘는 트림 두 개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듯이
여권 두께의 가벼운 손바닥이 내 뺨을 두드리고 있었다
한 꼬투리 속에 땅콩 두쪽알이
몽롱한 시선을 뒤흔든다
나는 불렀어 자기 밥 먹으라고
그러니까 다 자기 잘못이지
속삭였겠죠 속으로만 식사하세요 분명
그랬다면 또 어쩔 건데
자기 로맨스 영화나 한 잔 할까
쓸모 있는 남자가 될 시간은 얼마나 남았을까
실은 저 우주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몰라서
그 놈의 오페라의 유령일 것이다
분홍빛 란제리 레이스가 흔들린다
12
옥수수 콘이나 뜯고
모기장 구멍처럼 촘촘한 별빛 아래 앉는다
심통 난 거야
뒤 돌아서는 여자
늘 달려들어 타인의 평화를 위협하는 신기한 재능이 있다
강으로 흘러가는 두 갈래의 실개천
쿠키 씹는 소리조차 조용했는데
서로 잡아먹지 못해
안타까워 하는 사이라면 참 좋았을 텐데
기다리는 것과 대결할 순간을 꿈꾸면서 말이지
소방차 같은 새빨간 립스틱일까
다음 생에서 만나요 하는 손짓 같다
사랑이란 재생 불가능한 자원은 아닐까
이 시간 이 분위기
색채의 부재가 부각되는 시간
늦더라도 안 가보는 것보단 더 후회스러울 것이다
13
똑똑
주무세요
대답이 없는 문짝
고이 잠드소서
14
무성한 초록잎으로
우수수 울어대는 자작나무
겹겹이 포개진 산맥
누가 누굴 소유할 수 있을까
15
아침에 일어나서
어떤 일을 하게 만드는 게 뭐였더라
16
누굴 미워해야 할지
모른 채
미워할 아침을 다시 맞는다
17
붓다의 미소로 가부좌를 틀고 있는 소파
누군가의 공백을 가만히 더듬고 있는 걸까
여자는 24프레임의 영화관 영화 같이 흐른다
18
짧고 굵직한 불도그 목덜미가 갸우둥 바라본다
달리지 않으면 쓰러지는 자전거이거나
헤엄치지 않으면 가라앉는 수영이거나
창틀에 안간힘을 쓰는 아침
무심한 시선 속으로 늘어선 산맥들
긴 하루를 향해 그림자를 끌어 올린다
19
생각하고 말 게 뭐가 있어
통통한 라즈베리 통입술이
확 풀어지며 덮친다
문맥을 믿지 않지만 키스는 믿을만 했다
실개천은 더 얕아지고
연못 금붕어는 더 붉어졌다
나 어젯밤
안 자고 있었지롱
고이 잠드소서는 뭐야
21
꺼지기 직전의 촛불 같이
가물거리는 눈동자 속의 눈동자는
누구의 것이였을까
댓글목록
꿈길따라님의 댓글
앞 하고 뒷 부분
그 공백의 의미!!
정말 대단합니다.
폭염 중 늘 건강 하사
향필 하시길 기원합니다
[꿈길따라] 은파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