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흉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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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숲 속에 부엉부엉 어둠이 내리면
지평선 커튼에 걸린
안개구름과 낯익은 풍경이 전멸한다
2
노을빛이 뒷구석까지 관통한다
내장을 발라낸
거대한 여름밤 위에
노랗고 건조한 보름달이 삼켜졌다
줄줄이 늘어선 살림살이와 새까만 구름 조각들이
늙은 감나무에 걸리고
3
맨홀뚜껑을 들어 올렸다
내려앉은 가로등과 건물 귀퉁이
차오른 물소리가 가득했고
뒤틀리게 부어오른 손마디 마디 주먹을 쥐었다
모두가 뭔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뭘 기다리는지
최악은 이미 비켜간 듯했지만
여전히 먹구름들이 낮게 깔려 있었다
계곡 능선을 따라 다가오는 아침이
반가울 뿐
가까스로 건져올린 소지품 몇 장
벌거벗은 진흙탕 위로
푸른 하늘이 언뜻언뜻 지나갔다
세상은 언젠가를 약속했지만
골목길의 그날은 여전히 아직이었다
4
항복의 깃발 같이 흔들어 보는 백지
타협은 행복한 항복을 인증합니다 그렇게
권하던 콩나물 대갈리들은 다들 어디로 가셨나
저도 이제는 행복했으면 하는데요
그러니까 그러므로써 그렇다니까요
수두룩하게 0 이 붙은 숫자들의 꿈을
어수룩하게 비웃던 저기 무뚝뚝씨가 간다
사람도 집도 모두가 그대로인데 갸우뚱
골목길 모퉁이에 소화전만 새빨간 새 것이더라
무슨 희귀금속이라도 분리해냈는지
중얼중얼거리며 흘러간다
5
詩론에 찌든 레시피를 비웃는다면서
시대의 결핍감을 조롱하다가
사회 공학 테크닉에 무심했던 까닭에
인간성으로 물폭탄을 맞은 침묵이 간다
그늘진 담벼락을 빠져 나온 그는
잠시 마중나온 햇살 벽에 가로막혀
그 귀한 금속을 분실할까 걱정인지
이왕지사 이리된 것, 아주 눈감고
칙칙했던 분위기를 실감나게 다룰 기교를 검색한다
우중충한 디킨즈는 아니야 아니지 그럼 그렇고 말고
헤밍웨이 르포르타즈가 그럴싸하겠어
척 보면 노인과 바다 꼴이였으니
허락만 하신다면 다음 기회에는
달나라 이야기를 쓸수 있을텐데
입맛을 다시며 질퍽 질퍽 길을 피해 가는 발걸음도
획가닥 詩 같이 색다르다
6
서로 좋은 사이로 서 있기 위해
모르는 척하는 사이
우리는 너무 멀리 가버린 건 아니였을까
허기가 눈앞에 멀쩡히 눈뜨고 있는데
집은 해바라기 동굴처럼 적막할 것이다
저무는 노을 창턱
쇠락으로 썩어가는 거리
길게 늘어선 가로등 뒤에
쾡하게 눈 뜨는 달
천하를 다 가지든가
금욕을 다 가지든가
길고 노란 속눈썹처럼 떨어지는 소주잔 소리
그날의 기이한 전율과 연민을
함께 나눠 마시고 있을, 그를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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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똥맹꽁이님의 댓글
언젠가는 기억이 가물
맨홀뚜껑을 열고
오로지 영웅처럼 기어 들어가
하수구 안을 청소하다
250이란 압력호수에 맞아
파스를 잔뜩 붙이고는
이렇게 일하는것 도 괜찮다
스스로 위안을 하고
맨땅에 돗자리 깔아
저녁 노을 보면서
동료와
냄새나는 손바닥에
쌈을 몇장을 포개놓고
고기를 가득담아
숨넘어 갈정도로 우겨넣으며
이것이 노역의 꽃이야 하면서
소주 한잔 기울이던 때가
생각납니다
시를 보는내내 아련하고
어젠가 여행갔던
전북 김제 쯤 정도 되나
너른 들판 평야에
작은 산밑 마을이 그리워 집니다
시 잘읽고 갑니다
하루 평안하셔요^^
소드 시인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