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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3건 조회 1,301회 작성일 18-05-06 22:36

본문


시작 노트

  활연





  팔다리가 잘린 우리는 책상머리에 앉아 시를 씁니다

  우주는 쓰레기를 주워 담은 하얀 주머니와 까만 구멍으로 하염없이 팽창하고 있습니다

  손가락을 꺾어 하나씩 버리며 쓴 시는 우물우물 먹기에 좋습니다 누구에게 보여주는 일은 얼굴 한 쪽이 팔리는 것 같아서 심장 안뜰에 간직합니다 그래서 자주 가슴이 가렵습니다

  비가 내리면 번갯불 문장이 내리꽂히지만 자정작용이란 문장끼리 부딪치다 냇물이 되는 것

  시를 낭독하는 시간은 즐겁습니다 타인이 가져다준 입술을 옴죽거리면 괴상한 발음이 생기지만 내가 낳은 자식은 다 예쁜 법입니다

  심심해서 쓰는 건 절대 아닙니다 심심할 겨를 없이

  책상머리가 자전할 때와 방(房)이 공전하는 때를 구분하는 일은 쉽습니다 

  머리통을 창문에 매달아 놓고 시를 쓰면 울렁거림이 생깁니다 감동의 피부란 흔들리는 물풍선이겠지만

  어깨를 걸치고 술 마실 동무가 없으니까 술술 시나 쓸밖에

  아침마다 청소차가 상한 눈알을 주워가지 않는 것이 아쉽지만 해체된 것들을 퍼즐 맞추고

  몸통이 없는 시를 씁니다 해저를 천천히 걷는 해마가 자주 밟히지만 물속이라서 흔적이 없습니다

  문예지에선 연락이 없지만 애초에 그들은 관심이 없습니다 땅콩이나 오징어 등

  치명적인 걸 찾으려다 귓밥을 흘립니다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씨 탓에 행간이 무척 미끄럽습니다

  오늘 쓴 시의 제목은 사회적 식물, 이렇게 정했는데 아무리 그렇더라도 좆같은 새끼,라 하지 마십시오

  외로움을 분양하면 시가 되는 쪽으로 부는 편서풍, 상승기류의 무등을 탄 소모적인 새끼,라 부르지 마십시오

  죽을 때까지 탄피를 쏟을 작정이니까요





댓글목록

서피랑님의 댓글

profile_image 서피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공감되는 표현이 맞습니다..
행간이 무척 미끄럽다는 대목에서
잠시 중심을 잃을 뻔 했습니다^^;;
마지막 행에서는
새삼 글을 쓰는 일에 대한...
얼굴를 무겁게 합니다.

건강한 오월 보내시길 바랍니다..

안희선.님의 댓글

profile_image 안희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아, 이거..고개 격심히 끄덕이다가
목 디스크 걸리겠습니다

- 책임, 지삼

전에 쓰던 아이디가 글쓰기제한 및 접근금지를 당한 탓에
부득이 점박이(?) 아이디로 인사 드립니다

(참, 좋은 시마을)

그건 그렇고..

같잖은 문예지 따윈 무시하시고
차라리, 개인시집 출간하소서

(저 개인적으로 생각컨데는)
이미, 한국 시단에 한 획을 그은 시인님 아닙니까

활연님의 댓글

profile_image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봄이 곧 가려고 몸 비틀어 빗물도 짜내고
온산엔 연두가 솟구치는 즈음입니다.
오랜 세월 참 많이 쓰고, 또 어떤 이들의 시에 기대고
했지만 정작 쓰는 게 무슨 힘인지 몰랐지요.
혼자 물장구나 치며 사는 건, 무위로운 일일 것이고
저도 이제는 조금씩 제도권의 문을 두드려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간, 아무런 곳에도 응모를 안 한 것은
다만 게으른 이유 때문이고 제도의 문제라면
뛰어난 이가 돌출해서 부수면 될 것인데
저는 솔직히, 고만고만한 시력이라서
정작 뭐가 되는 것에도 소홀한 것 같습니다.
한 잎의 낙엽이라도 쌓아두면 불쏘시개 탑이 될 것인데
각성해야겠습니다.
가고 싶은 곳은 문턱이 너무 높고, 주변은 잘 모르고
시를 쓰며 살아가는 건, 허망한 짓의 일종일지
몰라도, 만날 문청, 문청하며 시덥잖게 노는 것도
참 한심한 일이지요. 그런저런 자괴,
로 지은 글입니다.
모쪼록 더욱 짙푸르게 환해지는 계절,
좋은 일 많으시길
환히 오신 두 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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