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이르는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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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이 구부정한 눈사람이 입술을 딸삭거릴 때마다 눈가루가 떨어진다. 바둑판을 꿈꾸는 비자 나무가 흰 돌을 꿈꾸는 눈 송이들을 받들며 아직 땅을 이루지 못한 내면에 또 한 가닥 둥근 먹줄을 긋는다. 욕정은 긁으면 긁을수록 가려운 사면발이 같아 격렬하게 손톱이 지나다닌 자리에 피딱지가 앉았다. 절망은 앉았다 일어서면 눈 앞이 깜깜한 빈혈이였지만 악성은 드물었다. 어제 저녁, 공복에 복용한 희망은 항생제가 아니라 진통제였다. 술에 취하면 아픔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아픔이 용서 되는 것이다. 눈보라를 치고 실내가 된 풍경이 술병과 탁자와 불빛을 딸려 나를 세상 밖으로 내몰고 있다. 건너편 옷집의 쇼윈도우가 열린 옷장처럼 목도리를 두르고 외출을 준비하고 있다. 식구들이 많은지 완사 순대 국밥집의 낡은 식탁들이 의자를 바싹 들이며 턱을 괴고 밥 때를 기다리고, 아버지만 드나드는 서재처럼 우울한 서점이 입가에 세로로 잡힌 주름처럼 꽂힌 책들을 밀고 당기며 늙어간다. 재작년 지독했던 독감에 상했던 기관지에는 아직도 순결한 가래가 끓는다. 이미 베르니케 영역까지 침범해서 신의 목소리를 흉내내는 매독을 욕망이라 불러야 할지 꿈이라 불러야 할지 진단해줄 의사는 예약에 쫓긴다. 술잔을 잡은 손끝까지 전이된 타성은 이미 손쓸 수 없는 암이다. 어김없이 내일을 향해 십일조를 내는 오늘의 손들은 말단비대증에 걸려서 서로를 몰라 본다. 건너편 편의점 유리문이 덜컹인다. 24시간 동안 갖은 시름을 팔던 어머니의 하품을 다둑이며 시린 손바닥이 덜컹인다. 좀처럼 눈보라는 걷히지 않고, 나는 여전히 노을져 가는 창 밖, 속(俗)의 바깥,
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댓글목록
서피랑님의 댓글
시가 드리우는 그림자가 격렬하여 주춤거리게 합니다.
나는 여전히 노을져 가는 창 밖, 속의 바깥,
근접하기 힘든 깊이에
굳이 피상적인 느낌이라도 내려놓자면.
조금 더 각 문장을 간결하게 끊어가면서 호흡을 가져가시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병.. 아픔이란 계절이 우리를 통제하는 지루하고 오래된 방식...
님이 마주치는 아픔에 연대를 보냅니다..
공덕수님의 댓글
서피랑님..근접 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어요. 말장난 입니다.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어느 철학자가 말했다는데
그냥 살면 다 죽으니까 사는 것 자체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아주 얕은 대꾸 같은 겁니다.
희노애락 자체가 생로병 모두 죽음에 이르는 병에 지나지 않는다고
산다는 것은 환자의 시간이라고,
좀 아프더라도 너무 심각하게, 나만 그런가 억울하게 여기지 말라고
사실은 가벼운 메세지를 담고 싶었는데..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 배경 음악 때문에 심란하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혹시 마지막 구절 누가 쓰먹은 것인가 싶어
검색 많이 해봤는데..제가 무식해서 표절을 하게 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요. 누가 제 호흡이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음악을 켜놓고 낭송을 해보면 느낄 수 있다고 하더군요.
잘 쓰여진 시는 음악을 깔면 더 매끄럽게 느껴지는데
그렇지 않은 시는 사포질 하지 않은 나뭇결 같더군요.
고마운 걸음 아름다운 관심, 감사드립니다.
서피랑님의 댓글의 댓글
제 pc가 단순,노후하여 음악을 들을 수 없어 아쉽네요 ^^
저는 습작을 할 때 거의 100%로 pc를 이용하는 데요,
(메모노트 사용하기엔 불편한 신체구조라서 ^^::)
암튼 퇴고 시엔 출력을 하여 조용한 곳에서 읽어봅니다,
pc화면과 달리 지면은 보이지 않던 것을 보게 하거든요,..
공덕수님의 댓글
이제는 작품을 만들 때도 된 것 같습니다.
진정한 시를 쓸 수 있도록 많은 조언 부탁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