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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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찾습니다
가끔 횡단보도 앞에서 착시 현상이 일어난다
건너가야 하는 저편이 초록불을 기다리고 서 있는 이편보다 높아 보인다.
사다리를 타고 평지를 건너는 것이다
달리는 차들을 피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려 기어오르는 것처럼,
전봇대는 항상 그 앞에 서서 사람을 찾는다
마치 수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던 물처럼 건너오는 사람들이
사람이 아니라는듯이 사람을 찾는다
가끔 개를 찾기도 하지만
개 보다 사람 찾기가 더 힘든지 대부분은 사람을 찾는다
언제 사람 될거냐고,
사람 좀 되라는 주문을 자주 받던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지나가는 사람들도 사실은 아직 사람이 아니구나
안도의 숨을 내쉬며 전봇대의 찢어지는 가슴을 외면하고 걷는다
어떤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꾼다고 했고
어떤 대통령은 사람이 먼저라고 했다
그래서 세상의 전봇대들은 밤잠도 자지 않고 서서
사람을 찾는가?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까 다스릴 나라가 없어서
사람이 먼저인데 사람이 없으니까 아무 것도 시작할수 없어서,
전봇대가 찾는 사람은 정신지체 3급 이였다
눈이 약간 사시라고 했다
왼쪽 다리를 약간 절고
서른 두살인데 다섯살 지능을 가졌다고 했다
주먹을 쥐면 오른 손 네번째 손가락이
반대편 손가락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펴지지도 구부러지지도 않는다
사람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컴퓨터 모니터를 앞세우고 앉으면 허리가 아파서 몸을 뒤튼다
내가 하늘을 보면 사람들은(가령 사람들이라면)
왜 그렇게 째려 보느냐고 묻는다
한 쪽 발을 꿈속에
한 쪽 발을 땅에 딪고 있는 나는 언제나 절름발이다
눈이라도 내리면 길이 미끄러운 것도
땅이 철벅이는 것도, 이불을 말릴 수 없는 것도
아무 걱정 아닌, 나는 다섯살이다.
전봇대는 왜 나를 찾는 것일까?
전봇대는 왜 나를 찾아내지 못하는 것일까?
저 새끼 사람 아니다
사람 아닌 사람과 상종하지 말자
사람도 아닌 새끼를 낳을까봐 결혼도 하지 않고
서로 사람도 아니라서 서로 사람 취급 하지 않고
사람 위에도 사람 없고
사람 밑에도 사람 없고
사람 곁에도 사람 없고
사람이 되어가거나
사람이 되려면 한참 멀었거나
발 떨어진 오징어처럼
사람의 축에 끼일 수 없거나
사람의 탈을 썼거나
금수보다 못하거나
오늘도 전봇대는 나를 찾지 못하고
짓눈개비를 맞으면서
사막을 건너가는 신기루들을
눈을 씻고 바라보고 있다
전봇대는 사람을 찾는다
잠옷 바람으로 새벽에 나가버린 나이 80의
치매 판정을 받은 사람을 찾는다
저녁을 먹다, 슬리퍼를 신고
머리를 파마 보자기로 싸매고 나가버린
사십대 후반의
오른 쪽 입술 밑에 큰 점이 있는 사람을 찾는다
그렇게 무작정 나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전봇대는 찾는다.
댓글목록
하올로님의 댓글
짝!짝!짝!
공덕수님의 댓글
감사합니다. 막 쓰내려 간 것이라..
사람 좀 되라 소리 많이 들어서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보고
저도 사람 좀 되어 보려고 쓴 글입니당...
혹시 사람이십니까?
동피랑님의 댓글
기울어진 나를 누군가 받쳐주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라고 하네요.
그러므로 부족해야 완전한 사람일지도....
차라리 솔직한 개나 찾읍시다.
공덕수님의 댓글
제 귀가 좀 이상한가 봐요.
사람을 찾습니다.
사람을 구합니다.
이런 문구들을 읽으면 왜 이렇게 들리는지
사람을 잃어버린 시대
혹은 사람을 잃어가는 시대
근대 사람이 누구예요?
정말 궁금합니다. ㅋㅋㅋ
새벽 세시까지 술 마시고 돌아댕기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모니다.
동피랑님! 맨날 맨날, 베리베리
쎄리 쎄리 감솨요.
서피랑님의 댓글
제 느낌에 근래에 본 시들 중
작품의 발전 가능성면에서 단연 최고입니다...
서술의 거친 숨을 가라앉힌 뒤
건조하게 잘 다듬어 가시면
웬만한 신춘문예 당선 시보다 훨씬
뛰어난 작품이 될 것 같네요.
감각적인 발상, 시선에 진정성까지 갖춘..
잘 감상했습니다^^
공덕수님의 댓글
퇴고가 새로 시 한편 쓰는 것보다 힘들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 시 창고에는 마구 쓰서 아무렇게나 던져 놓은 시들이 많아요.
하도 많이 쓰니까 제가 썼던 내용도 잊어먹어서 중복 되는 것들도
있는 것 같아요. 도 통할려면 얼마나 더 쓰야 할지..
제가 한 자루 연필 같습니다.
얼마나 쓰면 흑심이 다 닳아서 세상 종이들을 더럽히지 않을지,
근데 그것도 다 닳아가는지,
편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어요.
다음 생이 있으면 진짜 시 한 편 쓸 수 있을까요?
뭐라도 올 것 같은 날씨 입니다.
감기 걸리지 마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