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13>시충(詩蟲)엘레지(elegy)-슬픔을 노래한 악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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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충(詩蟲)엘레지(elegy)
-슬픔을 노래한 악곡
박찬일
밤마다 뭔가가 뇌를 갉아왔다.
물렁한 뇌는 감당하지 못하고 통증에 신음했다.
핀셋을 들고 현미경을 꼰아세워 놈을 겨냥했다.
실핏줄 사이 사이 뉴런과 해마사이를 오가며 맛있게 갉아대는 너.
너는 뭐냐?
아나사키스 닮은 놈.
담장이같은 팔들로 전두엽과 좌우뇌를 휘감듯 얽어맨 놈.
장이나 위벽을 뚫고 나와 혈관을 타고 뇌로 들어가 알을 까고 기생하다
다양한 동물의 중추신경계를 교란시켜
그 동물이 행동하도록 유도하는 기생충처럼
녀석의 팔다리는 나의 뇌를 제 집인양 사방팔방 헤집으며
얽어매고 갉아대는데
머리가 아프다.
복통과 구토가 일어난다. 사유가 막히고 통증이 지속된다.
충동적 몽환에 불쑥 불쑥 뜨거운 뇌를 식힐 물길을 서둘러 찾게 만든다.
아! 뭔가? 이건
문득 문득
연가시가 생각났다.
숙주인간된 내가 생각났다.
최종숙주도 아닌 중간숙주
놈은 나를 감염시키고 변이시키고 사육하고
그러다 어느날 생을 다한 맛없는 나를 떠나갈 것이다.
'지아이'를 떠올렸다.
물고기의 몸통 한가운데를 지나는 척추와 갈비뼈 사이
측선을 지나는 혈합육에 박혀있는 가시-지아이를.
놈은 지금 내 몸을 녹여 갈비살 언저리를 자신 앞에 흐물거리는 순살 상태로 만들고 있다.
실처럼 가느다란 녀석이 스스로 복종하지 않을 지아이를 없애고 그 자리에 상관물을 자라게한다.
충분히 자라면 뇌 속의 모주와 같이 작동해 세상 모든 것에 넉넉히 울게 한다.
사유 한 번에도 불행을 노래하고 음유시인처럼 슬픔을 보듬다가 괴로움을 쓰다듬는다.
실핏줄 비스므리하게 생긴 녀석은 이미 나의 암살자, 나의 운둔자, 나의 아미네이터다.
지금, 나의 선도는 엉망이다.
건져낸 시충을 이쑤시개로 살포시 들어 올려본다.
어디가 머리고 어디가 꼬리인지 모르는 너
꼬불꼬불 뒤엉킨 너,
너는 머지않아 나의 피와 내장마저 녹여내려 할 것이다.
얼마남지 않은 듯 하다.
너는 나를 떠날 것이고 나를 중간숙주 삼아 또 누군가를 집어삼킬 것이다.
민들레 포자처럼.
메타나 충처럼 종자를 뿌리러, 우리를 시산이 아닌, 시의 강에 빠지게 할 것이다.
어디선가 나른해진 풍선처럼
내 몸 속 시충(詩蟲)의 슬픈 비가 -엘레지(elegy)가 들려왔다.
20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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