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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머니 속에 날아다니는 일 촉들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공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4건 조회 1,817회 작성일 17-12-25 11:16

본문


내 주머니 속에 날아다니는 일 촉들

                                                            

                                                                                / 공잘



기슭을 뒤집어 흔들지 말라 숨을 곳 없는 내 증오가 서럽다 고물상이 수지를 못 맞추는 일이 잦아지자 나는 내 장롱 안의 정장을 그렇게 불렀다

겨울의 입자처럼 작아진 사람들이 늦은 밤 일 촉을 견디며 시퍼런 강을 건넌다 금이 간 다리에서 장례도 없이 죽은 자라들이 툭툭 떨어진다 해의 안색이 바뀌었어도 목화밭에 불을 지르는 자들은 조금도 줄지를 않았다 상반신을 잃어버린 하반신들이 비둘기를 다리며
외면하는 보도블럭을 버티며
가족의 품으로 발가락을 조금씩 떼어준다

개미가 지나간 길을 고대로 따라갔다 막다른 벽,
너의 보물은 무엇이냐
내가 지닌 가장 값진 보물을 서슴 없이 내주고 늙은 개미가 새겨진 벽화를 주저 없이 받아왔다
오, 자해가 주는 기쁨이라니
버드나무와 사이좋게 나누어 가졌다 잔 숨으로 구겨진 숟가락을 간지르자 내 정장이 온순해졌다 빈 손은 마약 같아서 비의는 장롱 밑으로 쓸려가도 외롭지 않다네
틈틈이 내 주머니가 화분에 들어가 서 있는다
문 앞에 서서 강산이 바뀌는 것을 참으며 길을 기다린다 거울 앞에서 우리의 자라들은 날아다닌다 못쓰는 고물들에 대하여 석유통을 던지고 촛불을 쏘아 맞힌다 한때는

이제는 범죄자처럼 얼굴을 훔쳐오지 않겠다
고물들을 치우고 녹을 닦읍시다 법원 앞 좁은 길을 새로 포장하는 일꾼들을 위해 손뼉을 갚지 않아도 미안하지 않다
신발과 모자 사이에 낀 채로 우리는 얼음 낚시를 다니지
신발이 버린 모자들이 넘어온 산처럼 벽 앞에 쌓여 있다 느닷없는 재채기처럼
동백화, 밤새 폭설을 뒤집어쓰고 파라핀이 된 울음아
심지처럼 시커멓게 타버린 갓길아
하얀 드레스로 표구된 영정이 내 쥐꼬리 만한 개나리에 입술을 따르고
장롱 문을 연다 내 정장들이 한꺼번에 비겁해진다









댓글목록

활연님의 댓글

profile_image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따지고 볼 것도 없이 신파란
내 쪽에서 먼저 부러우면 지는 법이다
이기고 지고 살 일도 아닌데 시 때문에
이름 없는 무덤 옆에 가서 잠도 자 보았다

  김경주 「하루도 새가 떨어지지 않는 하늘은 없다」에서.


이 시가 생각났습니다.

공잘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공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하루도 새가 떨어지지 않는 하늘이 없다

김경주

시 때문에 죽고 살 일은 없었으면 하는데
자꾸 엄마는 시를 놓으라고 울고 나는 고양이를 울린다
자꾸 시 가지고 생활을 반성하는 놈 좀 없었으면 하는데
시 때문에 30분을 책상에 앉아 있다가도 참혹해지고
시 한 편 발표하고 나면
몰래 거리에 쓰레기 봉지를 두고 온 기분이 든다

시 때문에 살 일 좀 생겼으면 하는데
사형수라 교수대를 향해 걸어가면서
뒤따라오는 간수들에게 갑자기
자꾸 밀지 말라고 울먹이는 광경처럼

밀지도 않는데 떠밀리고 있다는 느낌으로부터

시만 짜서 이대로 생활을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

시 때문에 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나
오래 시 안 쓰다가 다시 쓴다는 놈 생각
좀 하고

다시 쓴다는 놈치고
세상의 속물 다 겪은 후 오만하게 돌아온 것 못 봤다
그게 시의 구원이라면
시 때문에 형편없는 연애라도 그만두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
도 해 보지만
시 때문에 죽어서도 까불지 못하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따지고 볼 것도 없이 신파란
내 쪽에서 먼저 부러우면 지는 법이다
이기고 지고 살 일도 아닌데 시 때문에
이름 없는 무덤 옆에 가서 잠도 자 보았다

시 때문에 울먹이는 일 좀 없었으면 하는데
하루도 새가 떨어지지 않는 하늘이 없다


(『시차의 눈을 달랜다』, 민음사, 2009)



없는 시집이라 숲에 가서 긁어와 붙였습니다. 기담 다음에 나온 시집인가 봅니다.
이런 얘기를 하면 주류가 벌컥할지도 모르겠으나 제가 보기에 김경주는 원론적으로 김소월 같은 이와 다르지 않다고 여겨집니다.
활연 님이야 이태백이지만 전 아직 시를 못 이깁니다. 부럽습니다.
얼음 테이블에 뚜껑을 닫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동피랑님의 댓글

profile_image 동피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어디를 짚으면 맥인지, 분명코 뛰는데 심장이, 율동 있게 뛰는데 박동이, 어디를 만져도 맞는데 장농 출신 정장이,
뚫어져라 보는데 눈알 비벼, 동공을 찌르는데 어디선가 일 촉들이, 고마운데 공부 잘하라는 공잘님,
이게 바로 시다, 내거신 분!

공잘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공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싸늘한 눈들이 노는 곳에다 시를 던져놓고 그 눈들이 번져가는 광경을 미간으로 관찰해요. 제 시작법이자 퇴고법.
목줄에 알레르기가 있는 탓인데 내 글은 두통이나 시력 저하, 욕설 연마 등에 참 좋다,라고 피피엘할게요.^^
오늘은 빈 자리에 따뜻한 기척 일었으니 그늘은 당분간 덮어두어도 좋겠어요. 축하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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