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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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노을
바다 위에 누워 하늘을 본다
내 몸에 꽂힌, 수 많은 칼들이
잔뜩 날을 세워 노를 젖는다
내 몸의 피로 물든 바다가
기를 쓰며 하늘로 기어 오른다
내 안에서 출렁이던 그리움도
붉은 신음을 한다
갈매기 울음소리를 닮아간다
'아니, 갈매기 울음 소리겠지' 라며
스스로 환청을 한다
내 몸에 돋아나는 물의 소름들
그래서 이리, 추운 걸까
나 때문에 아팠던, 사랑도
해변에서 하얗게 파도로 솟는다
저래서 사랑은 미련한 거지
제 몸이 부서지는 것도 모르고
저 멀리, 눈길이 머무는 바다 위로
희미한 추억이 굳게 닫힌 창문을 연다
오랜 기억들이 그 창문에
거미줄처럼 주렁 걸리고
포박을 끊고 기어나온, 낡은 사람들이
내 피로 물든 바다에서 헤엄을 친다
그들이 내 안에서 살아 온 질긴 힘으로,
그들 중 몇몇은 나를 금방 앞지른다
참을 성 없는 내 입이 중얼거린다
앓느니, 차라리 죽지
내 위에서 무섭게 붉어가던,
저녁하늘이 혀를 찬다
시퍼렇게 주둥이만 살아 있는 것
빈 말이라도, 반성 좀 하렴
너로 인해 늙어버린 사람들인데,
가엽지도 않니
살아가면서 한 번 쯤은 따뜻하게
스스로 괴롭기도 해야지
인정머리라고는 없는 것
문득, 건드리만 해도
글썽일 듯 내 눈에 눈물이 맺힌다
입 안에 마른 침을 삼킨다
온 몸의 피가 바다로 다 흘러
지금, 나는 목이 마르다
붉게 출렁이는 짠물 위에서
한 잔의 생수(生水)가
비로소 그리운 거다
내 몸 안에 뜨거운 피는
이제 하나도 없어,
빈 노을 같은
몸이 되서야
- 안희선
Ever Love - Joe Hisaishi
댓글목록
활연님의 댓글
하늘, 칼, 피로 물든 바다, 희미한 추억, 저녁하늘, 거미줄, 포박, 질긴 힘,눈물,
한 잔의 생수, 몸.
언어의 파고가 높습니다. 기묘한 은유이거나 드높은 상징이 아니더라도
어느 한때는 시에 기대고 감정의 건기를 견디는 것도 좋을 듯 싶습니다.
건조함 또한 시의 덕목일지 모르겠으나,
액상으로 출렁거리는 감각이 더러 마음을 휘젓기도 하겠지요.
노을은 날마다 흘리는 하루치 피다,
그러니 이 세상은 고통과 슬픔이 자전하는 곳 아닌가 싶습니다.
쓸쓸한 개인과 우울한 군중 속에서 또 하루가 피었다가
붉게 지겠습니다.
안희선님의 댓글의 댓글
부족한 글인데..
너무 과분한 말씀을 주신 거 같습니다
이 졸시는 제가 평소에 그토록 강조하는, <소통>과는
매우 불일치함을 느낍니다
또한 제 나름으로는 그 어떤 회화적 繪畵的 느낌도
살리고 싶었는데..
결과적으로, 저만의 부질없는 넋두리의 그림이 되었구요
이런 형태의 시라면, (바람직한 것으로는)
시가 지시하는 이미지만 따라 읽어도
그 어떤 관심을 끌만한 글이어야 했는데..
시답지 않게 무리하게 개인적 상황이나 사건의 전개과정만을 말하고 있어
이른바 소통과는 그다지 관계없는 글이 된 느낌입니다
시안 詩眼이 깊으신 시인님이
이런 형편없는 졸시를 그다지 심히 나무라지 않으시니,
오히려 송구합니다 (차라리 매 맞는 게 낫지)
참, 오늘 비.토방에 올린 제 글은
(제 본의로) 시인님의 심기를 어지럽힌 감이 있네요 - 웃음
그저, 함께 글을 쓰는 문우의 情으로
너그럽게 혜량하시길요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