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산에 묻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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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산에 묻히고 /덤벨
먼 바다로부터 응집된 에너지의 파도가
해안선을 뛰어넘어 산속 치어들을 뿌린다
물줄기는 산산히 부서지고, 생명을 다한 참나무 위로 스며든다
날 발견한 숲의 친구들, 곤줄박이의 경계 소리 공중 찌르고
지근 스쳐간 쇠딱다구리에 자작나무 군집들
둘레에서 기류가 치솟자 수천 갈래 은빛이 쏟아진다.
고시 능선 따라 벼랑에 서면, 맥박은 뛰어 땀구멍이 열리고,
좁혀진 삼각하늘 바라본 저 편 머무는 초점엔, 회색빛 먹구름 서걱서걱 부서진다.
봉우리와 봉우리 이어진 봉긋한 선을 지나
또 다른 헤어짐의 선을 만나고, 오르고 내리고 구르고를 반복한다.
오른다.
다른 생각은 없다.
아니 숨이 생각을 죽인다.
짐승의 커다란 배설 흔적을 지나자, 호흡이 급해져 언덕 나무에 몸을 기댄다.
뿌지직 소리와 함께 썩은 나무의 밑둥치가 부러진다.
아찔한 빗각 마사토를 신발 측면으로 찍는다.
오른손 잡았던 돌 우지직 구른다. 숨이 꺾인다.
비명 순간, 왼손은 나뭇가지를 필사적으로 움켜쥔다.
진달래는 어리둥절 생사를 넘나든다.
흔들린 몸 중심 놀라 손바닥이 땅을 긁고
엉덩이 주저앉을 때 중추신경은 몸을 낮춰 접지력을 높인다.
주머니엔 보온커피 맛 산행조심해~! 문자 파르르 떤다
에스코트 할 줄 알았던 불신의 돌과 나무는 도처에 편재한다.
돌과 바위는 서로 쳐다보는 눈빛만으로 짜증과 비꼬음이 새 나온다.
멀리 돌 구르는 소리, 쿠르르—꿍.
계곡에서 명주잠자리들이 일제히 날아오른다
배반의 능욕은 배반의 산 배반의 동물 배반의 곤충 배반의 새와 배반의 나무로
계곡과 벼랑으로 이 산에도 득실거리고 저 산에도 멀리서 나던 소리 가보면 숨긴다.
아차하면 구르는 돌들 심산은 숨은 적들의 부비트랩.
나 하나 믿고 살아온 날들, 홀로 오르는 산
내가 날 버린다면, 오늘의 넌 그 자리 흙이 되거라.
굵은 일생 어떠냐고 초롱꽃에 묻는 순간, 매 순간 판단의 갈림길
너의 행복 무엇이냐 되묻는다. 위로받기 위한 가벼움은 바람에 떤다.
식은땀이 흐른다.
산양의 자리에 배에 공기 채워 부르는 가곡 장안사
"장하던 금전 벽우 찬 재 되고 남은 터에...
흥망이 산중에도 있다 하니 더욱 비감하여라"
마지막 목이 막힌다.
나의 추락, 운명은 이제 내가 세운다. 키 작은 잡목들이 고개를 든다.
베일 쌓인 흔적 들킬까, 헛기침이 먼저 튀어 오른다.
코끝에 맺힌 한 방울을 땅이 재빨리 받아낸다.
말 대신 흘러내린 지난날의 파편, 숲은 방명록을 뒤적이며 내 얼굴을 찾는다.
나는 웃음으로 몸을 낮춘다.
봉우리는 또 다른 능선으로 이어져 넘어가며, 어두워지는 빛 서늘하고,
나무엔 회귀 표시를 남긴다.
서쪽을 따라가던 동선에 허기진 배는 다래 열매를 주워 덥석 먹는다.
단절의 아픔이 첩첩산 골짜기 높은 곳, 만병초와 천삼 군락까지 나를 어느새 데려다 놓았다.
통신마저 닿지 않는 지점, 그곳에서 맨발로 흙을 밟는다
싹을 밟아 어둠을 지운다. 흙 바닥에서 지직! 지직! 소리가 난다
붉나무 잎과 개다래 열매 속 벌레는 흔들리며 충영이 된다
산이 갈비를 드러내 현을 뜯으며 노래하고, 우린 닮은 게 많다고 속삭인다
그곳엔 신마니의 재실이 있어, 본능의 절제된 욕망을 푸는 해체의식을 한다.
큰갓버섯과 산죽을 엮어 젓가리개 올린다. U자 휘어진 나무는 벽에 세우고
나무에 욕망을 문지른다.
향로의 향냄새 은은해지자
끈적하던 하얀 액이 겨드랑이에 점점 묽어지다
투명해지고, 그때 오래 묻어 있던 그녀의 냄새와 애증이 스르르 흘러갔다.
양팔에서 날개깃이 솟는다.
상수리나무 잔나비걸상에서 나비가 사실을 필사하고
부엉이는 냄새 없는 안개를 털며 큰 눈을 끔뻑인다.
송근봉은 땅속에서 양말 벗고, 젖은 소매 감추며 솟구쳐 오르는
기다린 듯 석이버섯은 묶인 허리띠를 풀고, 박쥐 되어 하늘을 난다
기쁨과 환희는 하루를 채 버티지 못했고, 어둠이 금세 스며들었다.
멧돼지가 파헤친 흙에 누워 영혼이 보고 싶었을 때
숲속 친구들은 말이 없고 체온과 체온을 십시일반 던져준다
껍질을 다 벗겨내니 아무것도 없었다
그 비움이 목청껏 외치고 있었다
투명하게,
절규를 뚫고 그림자와 나의 포옹이 왔다
빛과 어둠의 나 사이 용암이 흐르고 땅을 구르다 식었다.
발목 걸린 넝쿨들 우두둑 끊긴다
쐐기풀 스치는 목과 얼굴, 피부가 불처럼 화끈거린다
주먹바위 넓적 돌과 모난 돌
돌과 돌들이 충돌하고 나무와 나무가 부딪쳐, 섬광이 번쩍인다.
그 소요 뒤 깊은 평온함이 찾아왔다
나의 몸부림과 굉음은 은근히 산을 힘들게 하였다
산을 찾는 과정을 고백할 때 산은 말했다
내 아픔 속에서 너의 아픔을 보았노라고.....
난 견딜 수 없어 벗 하나 믿고 왔다 하자
산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계곡은 가장자리를 알 수 없는 이빨로, 직감과 감각 아래를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었다.
견딜 수 없는 그것은 악천후의 전조였다.
연두빛 봄도 붉은 가을도 나를 벌거숭이로 세운다
터진 입으로 살려 달라 외쳤으나, 들리는 건 숨뿐이었다
산은 넓은 관할구역을 감당할 자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날 공포는 모두 바다로 달렸다
먼 바다 파도가 해안선을 뛰어넘어 산으로 온다
시퍼런 물기둥이 계곡을 때리고, 눈을 질끈 감는 소나무, 땅이 힘들어 가지를 포기하려 한다
뒤따르는 파도 뒤에 또 파도. 정신을 바짝 차려 어둠의 비탈길을 포복으로 누워서 간다
배낭과 등이 맞닿아 투덜댄다. 새들도 흔적 없이 숨었다.
한두 방울이 모여 폭풍 계곡이 범람한다
산에는 일기예보도 보험도 없다
폭풍은 윙윙 기세를 부린다. 산이 떨고 나도 떤다.
하늘의 분노를 가볍게 대항하던 잣나무는 돌풍이 뿌리채 허공으로 날려버렸다.
숨겨진 모든 것을 보겠다는 악천후의 무작위 검열은 결국 주검을 알린다.
철부지 잣들은 어미의 단물을 물고 있는 체 운명을 달리한 까닭은,
잣나무 잔털처럼 남은 배반의 그림자가 풍화되어 숲 바닥에 흘린 미세한 찌꺼기였다.
바위가 말한다, 엎드려라 그 이후엔 기억이 없다
햇살, 눈을 뜨자 없던 계곡에 흙탕물 콸콸 흘러가고,
때죽나무 앉은 동고비, 한쪽 다리 뻗어 날개를 턴다. 머리 좌우측 돌리며 깃을 빗는다
나무들은 조잘거리고 바위들 끄덕인다.
악천후의 뒤끝이었다.
코끝을 짚어보고, 손바닥으로 뺨을 어루만진다.
죽었어야 할 내가 살아 있다.
숲속 생명들은 절뚝이며 하루를 정리한다.
악몽을 털듯, 숲이 탄력을 되찾는다.
발 굴린 자리마다 분비나무 솔방울 촛대에 불이 붙는다
그 불빛, 봉수대처럼 능선을 건너 산맥에 전해진다.
가지마다 맥동이 번지고, 숲은 첫 숨을 다시 연습한다.
잠의 껍질이 갈라지며 균류가 솟는다
첫 눈을 살짝 뜨며 놀란 세상을 본 표고들 폴짝폴짝 뛰며 솟구친다.
표고 밑 목심은 은밀하게 사방을 뻗어간다.
단팥빵처럼 살찐 표고들, 층층이 나무를 감싸며 웃는다.
견딤 끝에 내리는 생명의 배품이요 선물이다. 배낭이 배를 두드리며 너울거린다.
단풍잎은 숲의 슬픈 약속이었다. 악천후의 분노가 클수록 검양옻나무 붉은 잎,
짙어지는 열정 책갈피 넣었다.
차갑던 증오는 온기가 돌고 광대무당벌레가 뱅글뱅글 돌며 땅을 고른다.
목련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노래할 때 난 큰 사랑을 그린다.
나뭇잎 물방울 빛 음계 보며 코끼리바위가 첼로를 연주하고, 폭포가 박자를 맞춘다
산은 시 속의 쉼표로 심사위원석에 졸고 있다
계곡물에 신발을 벗지 않고, 터벅 들어가 허리 굽혀 얼굴을 첨벙 담근다.
이후 솟구쳐 물 알갱이 날리고 이쪽저쪽 부챗살 만든다.
기지개를 편다. 뽀드득 뽀드득 때를 떨치는 평화,
어둠의 숨죽인 반딧불은 머리에 성냥불을 켠다.
나뭇가지 사이 스며드는 바람이 머리를 말리고, 햇살 부셔 눈꺼풀 여닫는다.
따사로움이 잠을 부르고, 타월이 나를 눕힌다. 살맛나는 오늘이다.
내일, 그것은 내일의 시간에 맡기자. 촛대승마 여우꼬리 살짝 흔들린다.
새들의 웃음소리 흐르는 물에 스며들고, 작약 꽃이 하품을 한다.
계곡 가장자리, 돌단풍과 다슬기는 살아있다. 외친다.
메아리가 산을 때리고 돌아온다.
그 메아리 속에서 나도 있었다.
하산길, 발을 딛으며 오를 때 보지 못한 이끼들,
돌 위에 숨 쉬고 있었다
산을 내려온다.
그러나 산은 나를 내려 보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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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사진제공 : 임상균 약초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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