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있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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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있는 삶
시 속에서 살다
현실로 걸어나온 물푸레나무와
순천에서 시외버스 타고 왔던 프리지어는
장산 밑 재송동에서 시내버스 타고 온
군자란과 제라늄과 고무나무
그리고 사직동에서 지하철 타고 온
안시리움과
함께,
세월 나누며 살고 있습니다
누추한, 부부의 낡은 거실
긴 거울 곁 나무로 만든 탁자 위에서
착한 화분들이
구석엔 화장품 몇 개 올려 둔
좁다란 거기서 해처럼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가슴이 따끔거리던 밤
아무도 없이 멍하던 저녁
아내의 눈물이 빗물처럼 흐르고,
창자에 구멍이 나던
이별의 그 늦은 아침에도
거기서 살았습니다
왜 그래
왜 마음이 무너진 거니
물어도
아무런 대답 없이 떠나던 이파리들을
빈 표정으로 지켜보던 푸르른 이름들이었구요
전화를 걸고
문자를 남기고
또 포스트잇에 메모를 남겨도
대답 없던 이파리들
청태 같은 뒷모습을 바라만 보았습니다
생각이 생각을 찌르고
모조리 베어버린 후 진물만 고인 영혼
말씀의 생각 속에서 거닐던
초록의 차분함은
가시 솟은 섬망에 흐트러지고
고름의 생각들은
홀로 남겨진 광합성의 약속마저
밀어내고 있었던 게지요
남몰래
제목 없는 이별
뒤
제목 있는 삶을 살아내야 하는
남은 나무들이 있었구요
모든 미움이 나를 향할 때에도
사랑은 진리를 살아내게 하는 것,
보이지 않는 것들을 바라는
힘이라 배웠습니다
잠 못 이룬 밤 지나
아침 출근 전 거울을 바라보다가
문득 화분들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말없이 말을 건네 옵니다
그 어떤 사욕의 표정도 없습니다
그저 죄없이 푸르를 뿐
그러니 쉬운 눈물 따윈 흘리지 않을 겁니다
언제까지고
견고한, 말씀 옆에 서 있을 테니깐요
댓글목록
tang님의 댓글
충의로 환희의 세계와 함께 하려는 고독한 높음으로의 길에 서는 생의 고동과 함께 합니다
너덜길님의 댓글의 댓글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길 빕니다.
수퍼스톰님의 댓글
오랫만에 뵙습니다. 반갑습니다. 시인님.
제목이 있는 삶,
사물을 통해 좋은 제목에 어울리는 좋은 시를 참 곱게도 빚으셨네요.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빕니다. 감사합니다.
너덜길님의 댓글의 댓글
여전히 잘 지내시는지요.
항용 평안 속에 거하시길 빕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