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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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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소녀시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1,061회 작성일 21-07-13 19:52

본문

시인과 소녀



췌장암 말기선고를 받은 가리봉 오거리의
고가도로는 소녀의 까칠한 운명만큼이나
초라했다 

소녀의 고향은 태백준령을 넘어야
비로소 보이는 동쪽 바닷가 마을,
그녀가 왜 허물어져 가는 가리봉 노래방
벼랑 끝에서 밀월의 노예가
되었는지는 바람만이 아는 신의 선택이었다

양심을 팔아먹고 사는 시인 지망생을
사랑한 소녀의 순결도 기실은 신이 세상에
내려보낸 필연의 선택이었을까

만취한 가리봉 먹자골목 여인숙에서 나는
소녀의 죽어가는 악연을 처음 보았다

가늘게 떨리는 그녀의 넓적다리 속에서
꿈틀거리는 잃어버린 삭풍의 시간,
나는 그녀의 남은 생을 위하여
한계령을 건너 미지의 여행을 떠났다

엇박자의 결구에 사포질 당한 미완성 교향곡의
비명에 포박된 우리의 지친 살갗은 경포호 방파제
앞 모래사장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낯선 불륜을
거침없이 나누었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굴절된 미혹의 여명이
지옥으로 향해 달리는 만남의 광장 휴게소에
닿을 때 그녀는 숨을 멈추었다

황급히 가쁜 숨을 몰아쉬며 어찌할 수 없는
오 차원의 불빛 속을 질주하는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

동해의 청록 물비늘 위를 서성이던
양재 나들목 시민의 숲 튤립 이파리 속에서
불현듯 날아온 물병자리별 고독 한 움큼이
붉은 울음으로 꼬물꼬물 버석거리는
그때였다

시인이 되고자 했던 양심 한 결이
가리봉 오거리를 향하는 올림픽대로의
마천루 네온사인 숲에서
사박사박 휑한 주검으로 걸어가는

그제야 설핏 나는 보았다
해거름 뒤편에서 쭈뼛쭈뼛 일어서는
어느 백발노인의 짤막한 추억 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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