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노페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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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냄비 속에 끓고 있는 저녁
아이들과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동네 한 바퀴 산책하려다
더운 날씨에 스스로 꼬리를 잘라내고 티브이를 켰다
화면이 블랙스크린이 되더니 탄피처럼 후드득 쏟아지는 기억들
포항에서 7번 국도를 따라 20여 km 북진하면 영덕군 남정면 장사해수욕장
앞바다에 커다란 배 한 척이 정박해 있다
선명은 문산호, 2700톤급 전차상륙함(LST)
조금 전까지 해변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이 사라졌다
수평선 너머 소실점으로 아이들이 해처럼 가라앉고 있었다
물결 위로 번진 붉은 비명 같은 울부짖음들
허옇게 몸을 뒤집는 포말 속으로 아이들이 얼굴을 내밀었다 사라졌다
검게 그을린 비늘 조각들이 부르튼 각질처럼 허옇게 밀려왔다
쏴아, 밀려갔다
잘려나간 발목들이 파도의 페달을 밟는다
한낮의 스킬라와 칼립디스의 불협화음 속에서
한 무리의 아이들이 가파르게 숨을 후비며 아가미가 헐떡거리고 있다
슬프고 비통하게 촉수가 꿈틀거리는 백악기의 모래사장
멀리서 후리소리 들려온다
장중하게 익사를 꿈꾸는 여리고 강한 셈여림의 음파
속살을 파 먹은 갯강구 떼가 내 살갗을 뚫고 기어 나온다
파고가 잦아든 해변에는 아이들이 재재바르게
긴 호흡으로 느리게 느리게 문장을 연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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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탱크님의 댓글
잠시 머물다 마음 한조각 내려놓고 갑니다.
콩트님의 댓글의 댓글
휴가철 7번 국도를 자주 이용했는데
영덕을 지나갈 때마다 해안가에 서 있던 문산호를 그냥 스쳐 지나가기 일쑤였는데
엄청난 사연을 담고 있을 줄이야 저도 몰랐습니다.
국가를 위해 희생한 그분들의 숭고한 정신이 영원히 존중되길 고대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