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숲을 흔들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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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숲을 흔들었는가 /김 재 철
소나무 뒤, 붉은 틈 하나 벌어졌다
송이버섯, 남성의 기세로 꿰뚫듯 솟고
그를 마주한 능이는 전복처럼 촉촉이 열렸다
그 안엔 아무 말 없이 열린 입술 하나
큰갓버섯은 마릴린 먼로의 유두처럼 당당히 솟아 있었고
노란 젖버섯은 제 살 속에서 젖을 스스로 뿜었다.
술잔버섯은 숲을 두리번거리며
"이런 사이라면, 혼인을 서두르셔야지요" 잔을 내밀며 중얼거렸다.
노루궁뎅이는 고개를 확 돌렸다, 너무 찐한 장면 앞에서
머리만 회동하였던 자세 바로잡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멀리, 껄껄이그물버섯이 목말라 껄껄~.
그건 웃음이 아니라 목마름, 목마름이 아니라 질투였다
그리고 노루방귀버섯은 그 순간을 도저히 못 참고
펑! 숲을 흔들었다. 웃음 참는 이끼 웃음은 이끼~끼~.
깊은 밤, 누군가 닭다리를 시켜 놓고 갔다
"사랑도 먹고 하시라고…" 닭다리버섯은 말 대신 냄새만 남기고 사라졌다
그건 위로이자 유혹이었다.
끈적 긴뿌리버섯은 너무 오래 숨어 지켜봤고
결국 흥분은 몸을 이기지 못했다. 그는 스스로 녹아
숲바닥에 흘렀다. 그건 액체가 아니라 고백이었다.
이튿날 꽃송이버섯이 피었다. 하얀 부케 하나 들고
한쪽에서 조용히 말했다. "그쯤 했으면, 이제 결혼을 하셔야죠."
사건은 끝났지만 털귀신그물버섯이 나타났다. 그물망처럼 얽힌 말들 위에 앉아
말 없이 그 자리를 덮었고, 숲은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턱수염버섯이 고개를 들었다
그는 오래된 나무의 살 속에서 느릿하게, 그러나 누구보다 정확하게 말했다.
"육체는 피고, 감정은 흐르고
사랑은 결국 다시, 버섯처럼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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