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 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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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
가위질 멈춘 강가,
짓밟힌 발자국 몇 개,
물살은 달빛 속으로 숨었다.
묵은 이불처럼 축축한 밤,
자전거는 저편으로 스며들고,
잘린 팔은
버드나무에 매듭처럼 묶인다.
흔들리며 살아내는 몸,
바람 없는 날의 귀퉁이,
어머니의 젖은 눈길이 강에 묻힌다.
그 물빛 안에서
발꿈치가 공중잠을 익히고,
등 뒤엔 바코드,
값 대신 사연이 숨을 고른다.
개울물 위 난초 잔상,
피어 스며들다
부서진다.
밤의 입구,
거미줄 웃음은 찢기고,
토끼굴 속 빈 독은
오래된 울음을 지닌다.
모래알 하나
붉은 피를 흘리며,
벼랑 끝에서 참아온
숨죽인 말 한 줄이 선다.
호숫가,
꽃잎들이 분홍 입김을 남기고,
내 숨결은
유리 가루처럼 흩어진다.
사슬 위로 밤의 녹이 기어오르고,
맨몸엔
읽히지 않는 문장이
눈물로 번역된다.
이 흰 옷, 다시 걸칠 수 있을까.
강물에 스민 달빛,
누이의 이름처럼
천천히 뿌리 내린다.
젖지 않는 옷깃 하나,
찬물에 오래 삶아
비린내가 배인 속치마 같은 것,
버릴 수 없고, 잊을 수 없다.
댓글목록
tang님의 댓글
장엄한 존재를 향해 순전으로 이루어져야 할 암묵으로의 생명 율의 이입과 전이가 우주 거멈의 율에 닿나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