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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지의 사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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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바람도아프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565회 작성일 25-08-28 12:45

본문

벽지의 사생활

 

 

 

우리 집 벽지는 장미꽃무늬다

함께한 세월 탓인지

이제 저도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있다

그러는 벽지의 행동을 나는 더 잘 알고 있다

심지어 식성이며 취향까지

 

아침부터 호박전을 부치던 아내가 다급한 소리로

여보 빨리 저것 좀 뒤집어줘

 

이미 배가 부른 듯 누렇게 바랜 표정으로 혀를 내민 벽지

벌써 식사가 끝났나보다

 

지난밤 아내와 나는

벽지가 기억하고 있던 오래된 우리들 이야기를 꺼내

도란도란 맛난 밤을 보냈다

 

우리의 자잘한 일상까지 보고 듣고 기억해 주는 벽지가

가끔은 고맙다

내가 늙어가는 만큼 저도 세월은 이기지 못하는지 세월의 흔적을 안고 있지만,

내 젊음의 단단한 팔뚝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다

 

이제 웬만한 일로는 서로 놀라지도 기뻐하지도 않는 덤덤함까지

나를 탁본하듯 사는 버릇까지 생겼다

이제는 알몸으로 네 활개를 쳐도

하나도 부끄럽거나 어색하지 않아

고개를 돌리지도, 얼굴을 가리지도 않는 사이

 

어쩌다 중얼중얼 혼잣말해도 다 알아듣는지

수시로 표정이 바뀌는 벽지

 

오늘은 호박전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다녀오겠다는 아내에게 하는 인사말을 듣고

온몸을 흔드는 벽지

 

꽃송이들이 춤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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