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 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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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고향에 가는 길이었어요. 솔숲과 호수가 있다는 송호리에 도착한 것은 거의 해질녁이었어요. 슬라브 담벼락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 길게 그림자가 앞서가는 골목 안에서 컹컹거리는 개짓는 소리에, 그리고 텅 빈 침묵이 내려온다.
잠시 후 탕탕탕 고요를 깨트리는 경운기 엔진 소리에 하루에 한 번 오가는 버스가 가는 걸음을 멈추고 있었다. 누군가 내리고 있었다. 나였다.
선물 꾸러미를 들고 현관문을 들어선다. 먼지 낀 창틀에는 낡은 시간들이 무게를 견디지 못해 빗물처럼 흘러내리고, 작년에 고관절 수술을 한 구순의 노모가 네 발로 기듯이 나와 나를 반긴다. 깃털처럼 가벼운 노모를 안고 문지방을 넘으니 서러움이 좁은 거실 안에 가득하다. TV 화면에는 걸그룹이 몸을 흔들고 노래하고 있었다. 알 수 없는 가사가 눈을 찌른다.
지난 세월이 눈 먼 듯 귀 먼 듯 꿈결 같은데. 잘 계셨느냐고요? 묻고 또 묻는다. 아니요? 잘 계셨어요? 엉? 엉? 엉? 하는 말이 허공 속에 흩어진다. 너는 잘 사느냐고? 묻는 순간 노모의 여생이 얼마 남지 않는 것 같아 너무 이상했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라고 하는 듯했다. 방 안 가득 함께 한 눅눅한 세월이 힘겨워 보였다. 갑자기 무거운 침묵이 쏟아진다. 한 세기가 들어앉은 주름진 검은 얼굴에는 회한이 가득하였다.
잠시 침묵 후, 한 백 년이라는 세월을 견딘 노모의 쓸쓸한 일생 앞에서 난 한없이 엉엉 울고 싶었다. 걸어온 길, 때가 되었다고 하는 말과 하늘나라 가시는 그날이 언제인지 아는 것 같은 예감에 애써 초연해진다. 붉은 노을이 먼지 낀 창밖에 부딪히니 애달음은 배가 된다. 노모를 남겨두고 가야 한다는 이별의 슬픔이 너무 깊어서인지 궁상스러운 세월이 삽짝을 먼저 나서고 있었다.
댓글목록
수퍼스톰님의 댓글
글을 참 잘 쓰십니다.
이런 산문시는 실생활에서 직접 체험하지 않으면 절대로 나올 수 없는 시입니다.
자주 찾아 뵐 수 없고 찾아 뵐 때 마다 기력이 점점 쇠약해 지시는 구순의 어머니를 뒤로하고
집을 나서야 하는 안타까운 심정, 시인님의 시에 진하게 묻어 있습니다.
어렵더라도 생존해 계실 때 자주 찾아 뵙는 수 밖에요.
잘 감상하고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