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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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
황량한 들판에
모래바람이 눈곱이 되어 눈알을 파고든다
낫을 들고 옷섶을 후벼 파는 모래알들
거머리의 빨판처럼 목덜미를 거머쥔다
핏대 선 신기루조차 보이지 않는 머나먼 길
오늘 아침, 낙타도 없이 카라반들이 죽음을 몰고
이 길을 지나갔다고 한다
나는 모래 언덕을 향해 경배하듯 고개를 숙였다
내딛지 못한 발자국이 모래폭풍에 휩쓸려가고
아가리를 벌린 모래 구덩이 속으로 온몸이 늪처럼 빨려든다
크레바스에 잘려나간 발목들이 우후죽순으로 사방에 흩어져 있다
숨이 다한 서쪽하늘도 낙타의 발굽에 등뼈가 부러졌는지 주저앉는다
벌겋게 달아오른 천공으로 날짐승들이 허공의 밧줄을 거머쥐고
발악하듯 추락의 손목을 움켜쥔다
멀리 산란하는 허무의 빛줄기들
눈을 멀게하는 광란의 문을 열고 낯익은 소년이 걸어와 내 손을 거머쥔다
혀가 잘린 듯 아이는 신기루처럼 고요하고 지열처럼 이글거리다가
불사른 지방문처럼 날개옷도 없이 지평선을 삼킨다
황량한 들판이 아이의 얼굴을 가리고 침몰하고 있다
댓글목록
수퍼스톰님의 댓글
무너진 사막의 마지막 왕조 후손이
일몰을 마시며 뼈를 찾는 몽환적 풍경을 연상해봅니다.
일몰의 이미지 확장, 한 수 배우고 갑니다.
늘 건필 십시오. 꽁트시인님.
콩트님의 댓글의 댓글
어쩌다 친구들과 주석에 섬처럼 둘러앉으면
풍경을 감상하듯 그들의 몸짓을 말없이 바라보곤 합니다.
그럴 때면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담배냄새 같은
슬픔을 느끼곤 합니다.
외롭고 쓸쓸하고 젖은 손수건 같은 슬픔들이
끼니마다 밥상에 올라오는 묵은 반찬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이러한 감정들이 무딘 칼날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때로는 급소를 찌르는 흉기처럼 다가오기도 하더군요.
두서없이 말이 길어졌습니다.
많이 부족한 글에 격려의 말씀 주셔서 고맙습니다.
편안한 밤 되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