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가에 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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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에 서면
물기를 꽉 짠
파래 같은 구름들이 빨래처럼 널려있는 하늘
나는 미술실에 전시된 때 묻은 아그리파가 되어
물끄러미 천공을 바라본다
그런 아침이면
거무스레한 차림으로 거무튀튀한 얼굴로
자살바위에 올라 투신하는 최후의 인류가 되어
사람의 발자취가 멸종한 백악기의 해안선을 걷는다
썰물이 떼배처럼 밀려가면
거먼 조막손이 백사장에 보석처럼 널려있다
나는 내 얼굴을 닮은 뼛조각 하나 집어
물수제비를 날린다
대양을 박차고 튀어 오르는 날치 떼의 발악
핏대선 생의 궤적, 단서의 꼬리를 추적한다
내 몸에 웃자란 지느러미들
발적한 자국마다 슬픔의 고래회충이 득실거린다
이런 날이면 눈을 감기 일쑤다
눈뜬 날들의 병원체가 산란하는 빛의 항체에
유전의 사슬을 끊는다
창가에 서면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
구조를 요청하는 모스부호처럼 타닥타닥 거리는 소리
파래 같은 구름들이 타자기로 침몰하는 하늘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다
뗑겅뗑겅 내 유년의 슬레이트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창틈을 비집고 거북목을 내민다
비의 안부가 땅벌처럼 기어 나오고 있다
댓글목록
수퍼스톰님의 댓글
창밖의 풍경에서 많은 사유를 끌어 올리시는 군요.
잘 감상하며 한동안 머물다 갑니다.
좋은 주말 빚으십시오.
콩트님의 댓글의 댓글
오랜만에 모든 약속의 강을 건너
고추 친구들과 술 한잔 하고 왔습니다.
어쩌면 가족보다 더 가까운 이들,
제 부모의 마지막을 밤새 함께 했던
그들을 보듬고 챙기며 함께한 시간,
피를 나눠야만 가족이 아니라는 것을,
제 곁에 그들이 껌딱지처럼 남아 있다는 것이
하느님께 감사드릴뿐입니다.
그리고 부족한 저 같은 이에게
언제나 격려의 말씀, 주시는 시인님!
고맙습니다.




